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매정한 것으로,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에너지는 눈앞의 상황을 벗어나고, 조금이라도 더 밝은 무언가를 찾아낼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는 삶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들, 그래서 이상함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어떤 환경이나 상황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는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런 일상적인 수수께끼에 관한 격언이나 농담, 은근한 충고, 대처법, 혹은 피하는 법에 익숙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마주쳤을 때, 자신이 마주한 것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대처한다. 그는 좀처럼 당혹스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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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소년은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젊은이가 된다. 키가 작고, 아주 마른, 상대를 꿰뚫을 듯한 파란 눈을 지닌 젊은이였다. 그는 춤추고 노래했다. 무언극도 했다. 그는 무언극을 통해 얼굴 표정들로 미묘한 대화를 만들어냈고, 세심한 손동작과 그를 둘러싼 공기, 자유롭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 공기를 함께 활용한 동작들을 선보였다. 연기자로서 그는 최고의 소매치기가 되어 혼란과 절망이라는 주머니에서 웃음을 낚아채듯 끄집어냈다. 그는 영화들을 연출하고, 그 영화들에서 연기도 했다. 영화 속 장소들 역시 황량하고, 익명성을 띠며, 어머니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친애하는 독자들도 이미 내가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챘을 거라 생각한다.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꼬마, 떠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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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는 삶이란 잔인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고대 궁정 광대의 알록달록하고 밝은 복장은 이미 자신의 남달리 우울한 표정에 대한 농담이었다. 광대는 지게 마련이었다. 패배는 그가 하는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다. 


채플린의 익살이 지닌 에너지는 반복적이고 점점 커진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인 어떤 사람.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비밀은 바로 그 복수성複數性이다.


또한 그 복수성은 그의 희망이 반복적으로 산산조각 나는 일에 익숙해진 후에도 여전히 다음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는 반복해서 굴욕을 당하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반격을 할 때도 그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런 평정심이 그를 무적의 존재로, 거의 불멸의 존재로 보이게 한다. 희망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사건들 틈에서 그 불멸성을 감지한 우리는, 웃음으로 그 알아봄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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