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하고 또 속편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지난 3년간 세월호와 관련된 영화나 책을 보지 않았다. 간간히 뉴스나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몇 장면을 접하긴 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그냥 그럴 수가 없었다. 몇 가지 설명을 덧붙여 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어진 요즘 세상에서, 범람하는 바닷물과 기울어진 선체를 통한 시각의 스펙타클을 피하고 싶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혹은 저 유명한 카메라의 윤리와 다큐멘터리의 시학을 여전히 믿고 지지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해 가능한 만큼만 서사화된 고통과, 분노와 연민만을 추동하는 이미지들을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반쪽짜리 설명이다. 나는 거기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범람하는 이미지에 ‘오염’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여기엔 결단이 아니라 차라리 나의 비겁함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영화관에서 만난 친구와 세월호 3주기, 제 22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까지 함께 걸어갔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오늘은 문득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세월호 3주기 프로젝트의 일환인 <망각과 기억2: 돌아봄> part1과 part2를 보았다. 단편, 중편 다큐멘터리 6개를 모은 것이다. 안타까운 말이지만 개별 영화들은 좀처럼 특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3년간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볼 수 없다고 여겼던 이미지들이 스크린에서 나를 덮치는 것을 그대로 봐야 했던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짧게 스쳐지나가지만, 가라앉는 세월호 선박 내부의 영상과 클로즈업된 유가족들의 눈물. 지난날을 회상하는 인터뷰 장면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고 당일의 모습들. 바다 위에 뒤집힌 선박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압도적인 것이라, ‘세월호 이후’를 말하고자 하는 영화에서의 그 이미지가 주변의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사고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세월호는 여전히 우리에게 가까이, 너무나 가까이 있다. 나는 아직도 세월호가 우리 곁에 영화로 오지 않았으며 아직은 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나는 오늘 수차례 이런 생각을 했다. 박배일 감독의 <밀양 아리랑>의 제작을 지원했으며 그 이외에도 수많은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한 단체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때로, 찍는다는 것은 지킨다는 것이다. 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도망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고개를 들 때, 이미 나는 단순히 보지 않는다는 행동 하나만으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경계해야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는 여전히 보지 않아서 모르는 일들도 너무나 많이 있다. 세월호 주변을 불철주야 지켰던 민간 잠수사들과 그들의 남겨진 삶. 대책위 추모분과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가족들. 세월호 이후 자신들의 방법으로 기억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인들. 세월호 생존자가 버티고 마주해온 시간들. 피해 학생들의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


특히 고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다룬 <잠수사>와 세월호 피해 학생들의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룬 <오늘은, 여기까지>는 분명 주목할만한 영화이다. <잠수사>는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바로 진도로 내려가 구조작업을 지속한 민간 잠수사 김관홍씨의 생전 모습과 주변인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있다. 영화가 특히 빛을 발하는 부분은 그의 영웅적 면모에 대한 조명이나 구조 작업에서 정부가 보여주는 답답한 모습들이라기보다, 그 스스로도 명확하게 정의내리고 납득하지 못했던 세월호 사건에 대한 그의 기이한 애착을 매끄럽게 다듬지 않고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의 아내나 동료 잠수사도 이상한 일이었다고 회상하는 김관홍씨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나, 청문회 자리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무리한 구조작업을 했던 이유에 대해 말하는 장면들은 영화 자체가 마치 김관홍 잠수사를 닮은 것처럼 뭉툭하게 보는 이들을 건드려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긴다. <오늘은, 여기까지>에서 주의 깊게 듣고 있는 세월호 피해 학생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는,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유가족’의 모습들을 파열하며 세월호 사건에 대한 단일하고 일방적인 이해를 거부하게 만든다.


나는 여전히 우리가 세계의 비극과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시각의 스펙타클에 사로잡혀있다. 그러니 우리는, 보지 않는 것에 대해 분명히 더 많이 생각하고 대신 우리가 가져야 할 감각에 대해 매일 생각을 키워가야 한다. 그러나 범람하는 이미지들 앞에서, 또한 현장을 지켰던 카메라들이 포착한 진실의 단면들 앞에서 우리는 때로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사이를 치열하게 오가며 생각과 입장을 가다듬고 보는 것에서 출발해 보지 않는 것으로 가는 경로를 마련해야만 한다. 우리가 단순히 무언가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에 전혀 연루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우리가 나눠가진 운명, 연루자로서 살아가야 할 세상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곳을 더 날카로운 비평의 언어로 헤쳐가고 싶다. 목적지를 모르는 여정을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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