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40년대의 아일랜드. 여성은 남편이 아닌 남성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바다에서 자유로이 수영을 할 수도 없다. 전쟁의 중심부를 피해 고향 아일랜드로 돌아온 로즈(루니 마라)는, 그러나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생각한 바를 말하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자유롭게 수영하는 여자였다. 영화는 자신의 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혐의로 정신병원에서 50년을 보낸 로즈가 성경에 적어놓은 비밀일기를 따라 전개된다. 병원이 이전됨에 따라 정신과 의사인 그린박사(에릭 바나)가 로즈의 재심사를 맡게 되고, 억압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도 자유로이 살고자 했던 로즈의 과거가 일기를 통해 펼쳐진다. 전쟁의 광풍과 아일랜드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편을 나누고 서로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폐쇄적이고 좁은 사회 속에서 로즈는 사랑을 선택하고 용기를 낸다. 영화의 홍보문구는 종종 모든 것을 내걸고 지킨 사랑에 맞춰지는 것 같지만 이것은 사랑에 대한 예찬이라기보다 잔인한 운명에 내던져진 인물에 대한 영화이다. 실제로 로즈가 파일럿 마이클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허름한 오두막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은 아름답지만 찰나에 불과하고 로즈가 이후 정신병원에서 겪어야 했던 시간들은 적나라하고 고통스럽게 길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환희는 짧고 고통은 길지만 때로 사랑이야기는 한 인간의 삶을 포괄하는 형식이 될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그것이 작동되는 시대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아일랜드 여성의 일과 사랑을 다룬 다른 작품 <브루클린>이나, 루니 마라가 주연했던 영화 <캐롤>, 최근 개봉한 제프 니콜스 감독의 <러빙>등의 영화들은 사랑이 담긴 시대의 형식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부각된 영화들이었다. 로즈의 사랑은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는 것이지만 동시에 제약 속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온 세상의 방해를 받으며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려도, 그래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생의 나머지를 보낸다고 하더라도 이 여자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멜로드라마라는 형식이다. 휘몰아치는 어느 밤의 파도는 그 자체로 굴곡진 로즈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다. 현재시점의 로즈와 그린 박사의 이야기도 꽤 비중 있게 다뤄지는 편이다. 나이든 로즈는 종종 피아노를 치거나 일기를 읽어주며 자신의 삶에 대해 발화하고자 노력한다. 성경 귀퉁이에 적힌 로즈의 비밀 일기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그의 과거를 세세히 풀어내고, 그것을 끈기 있게 들어주는 그린 박사와 간호사는 결국 자신의 아이를 결코 죽인 적이 없다는 로즈의 말을 믿고 그의 삶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일기란 본래 문자화된 것이기 때문인지 일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면들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방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고 로즈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현재 시점의 그린 박사와 간호사의 감정에 다가가기가 다소 버겁다. 오히려 서배스천 배리의 원작 소설이 어떤 형식을 통해 미스터리와 반전에 다가가며 로즈의 사랑과 삶을 담아냈을지 궁금해진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함께한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의 왼발>, 토미 맥과이어와의 <브라더스>에 이어 루니 마라와 함께 고난과 역경 속에 내던져진 인물에 초점을 맞춘 짐 쉐리단 감독의 8년만의 신작이다.


2017년 4월 12일 개봉


감독 : 짐 쉐리단

출연 : 루니 마라, 에릭 바나,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테오 제임스, 잭 레이너, 에이단 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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