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된 얼음, 가슴에 자리를 차지할 심장이 없는 인간. 미스 슬로운은 그런 사람이다. 그녀는 워싱턴 최고의 로비스트로 세금문제가 전문이고 자유무역의 수호신이다. 잠도 거의 자지 않고 하루 16시간을 일하며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적과 아군 모두를 자신의 계산에 넣어 판을 짜고 누구와도 전체적인 그림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방침이다. 한 상원의원이 총기구입 시 신원확인절차를 엄격히 하는 총기규제법안(히튼-해리슨 법안) 통과를 저지할 목적으로 그녀를 찾는다. 동시에 소규모 로비스트 회사의 CEO인 슈미트가 슬로운을 찾아와 그 반대편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한다. 슬로운은 자신의 팀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옮겨 총기규제법안의 통과를 위해, 수정헌법 제2조(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수 있는 권리)로 쌓은 견고한 벽으로 지금껏 무너진 적 없던 거대권력의 반대편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한편 법안 통과를 저지하려는 세력은 슬로운을 국회청문회에 앉히기에 이르는데, 영화는 시작부터 이 상황을 제시해 청문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과 법안 통과를 위한 싸움의 과정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흔히 한 배우가 다양한 연기의 폭을 넘나들며 영화를 이끌어 갈 때, 그것이 종종 나쁜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차력쇼라는 말을 붙인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이 영화 <미스 슬로운>에서 말 그대로 괴력의 연기를 선보인다. 무시무시하게 쏟아지는 전문적인 대사와 팀원들은 물론 이제는 상사가 된 슈미트와 자신이 상대하는 의원들 모두를 상대로 주도권을 쥐고 사람들을 뒤흔드는 모습은 정말 쇼라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오직 배우 한 명만이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견고하고 재치 있는 각본과 조연들의 앙상블도 눈여겨볼만하다. 얼마전 <컨택트>에 삽입되어 다시 조명받은 곡 On the Nature of Daylight의 막스 리히터가 음악을 맡아 인상적인 순간들을 음악과 함께 기억하게 한다. 그녀의 로비 상대는 단지 상원의원들 뿐인 것이 아니라 상대편 회사의 로비스트나 직원들 심지어 자신의 팀원과 가까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슬로운은 승리를 위해 때로는 불법적인 일을 감행하거나 팀원들에게도 제한적인 정보만을 알려주고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유연하고 때로 위험하게 조정하는데, 그것이 종종 그녀 자신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위협이 되어 돌아온다. 이 아슬아슬한 슬로운의 방법이 반복됨에 따라 피로감이 누적되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이라는 슬로운의 말이 결정적으로 강조되는 장면은 전반부의 장점과 견주어 다소 김이 빠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2017년 3월 29일 개봉


감독 : 존 매든

출연 : 제시카 차스테인, 마크 스트롱, 구구 바샤-로, 마이클 스털버그, 알리슨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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