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어야 할까? 영희는 정말 알고 싶다.’


독일과 한국의 해변을 이 여자 영희가 걷는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의 19번째 장편영화로 독일에서의 1부와 강릉에서의 2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와 2부는 촬영감독도 서로 다르다. 1부는 박홍렬, 2부는 김형구 촬영감독이다.) 영희는 한국에서 유부남인 영화감독과의 만남이 주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독일로 떠났다. 그녀는 독일에서 지인 지영과 도시를 돌아다니고 공원을 산책하거나 지영이 알고 있는 독일인 부부의 집에 식사를 초대받아 방문하기도 한다. 식사를 마친 후 네 사람은 가까운 해변으로 나가는데, 영희는 홀로 떨어져 조용히 바다를 응시한다. 이윽고 2부가 시작되면 한산한 영화관 객석에 영희가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다. 강릉의 어느 영화관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강릉에서 영희는 몇몇 지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이런저런 감정들을 표현한다. 아무렇지 않아보이다가도 어느새 폭발할 것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이젠 곱게 죽는 것만을 바란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영희는 홀로 해변에 나와 있다. 이곳에서 그녀는 예상치 못한 만남과 마주하게 된다.


1부 독일에서 영희는 멜로디언을 잠시 연주하다가 서점에 들러 어느 악보를 구입한다. 주인은 직접 한 곡을 쳐주겠다며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런가하면 2부 강릉에서 영희는 커피를 마시던 카페 앞에 나가 담배를 피우며 노래한다. 많은 이들이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감독과 배우의 현실을 예로 들어 대조하고 해석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영화에 삽입된 연주와 노래의 장면들은 현실과 결코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생을 향해 힘겹게 나아간다. 어느 강연에서 프랑스의 영화감독 필립 가렐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예술은 삶을 살아가는 충동을 주는 것입니다.” 내내 검은 옷을 입고 어둠과 그림자 속을 헤매는 듯 보이는 영희는, 그러나 단조로움을 파열하며 자신만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마치 삶을 살아가는 충동을 매번 새롭게 느끼는 것처럼. 해가 지는 강릉 해변에 선 영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이 영화를 성립시키는 가장 큰 중심이 된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배우 김민희에게 돌아간 은곰상의 영예는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합당하다. 이 영화는 찬란하기보다 고요하고 끈질기며 가슴아프게 아름답다. 그리고 내게는 바로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충동을 준다.


2017년 3월 23일 개봉


감독 : 홍상수

출연 : 김민희, 서영화, 권해효, 정재영, 송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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