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이름은 맥스다. 그는 전쟁 중에 첩보 작전을 함께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그녀가 적국인 독일의 스파이인지 의심해야 한다. 그녀의 신원이 중요해지는 순간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불러 그를 멈춰 세운다. “맥스.” 대화를 마치고 등을 돌려 그 자리를 빠져나오려는 순간마다 그의 이름이 불린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 호명에 응답해야 한다. 번거로운 일이다. 마치 자신의 이름이 맥스라는 것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그는 호명에 응답한다. 이때 호명의 제스쳐가 그를 멈춰 세우고, 또 돌려 세운다는 것이 흥미롭다. 생각해보면 영화 <얼라이드>는 느린 속도로 파국을 향해 직진하는 운명을 멈추고 돌려 세우고 싶어 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 끈적끈적하고 느려터진 운명은 결코 멈춰지지 않는다. 파국은 예정되어 있으며 아무리 이름을 불러봐야 운명은 돌아보지 않는다. 마리안만이 거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데, 그녀가 최후의 결단과 함께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사랑한다는 말과 남자의 이름이다. “맥스, 사랑해요.”


<얼라이드>의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리안(마리온 꼬띠아르)의 신원이며 나중에 밝혀지듯 그 이름은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예민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은 맥스(브래드 피트)의 이름이다. 그 역시 스파이이기 때문에 신원을 감추거나 증명하는 일이 중요한데, 모로코에서의 작전 중 그의 위기는 지속적으로 찾아온다. 맥스를 심문했던 독일군 장교를 우연히 마주쳐 그를 살해해야 했거나 작전을 벌일 파티의 초대장을 구하기 위해 카드를 섞고 인광석의 화학식을 써야 했던 것 등이 그렇다. 작전이 성공하고 런던으로 돌아온 뒤에는 앞서 말했던 호명의 제스쳐들이 뒤따른다. 마리안의 영국 입국이 허가되었음을 알리는 상관 프랭크는 문을 열고 나가려는 맥스의 이름을 불러 그를 돌려세운 뒤, 작전 중 만난 인연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충고를 한다. 마리안의 신원을 확인해주리라 믿었던 예전 동료는 두 눈을 모두 잃었는데, 그 역시 낙담해 장소를 빠져나가려는 맥스를 멈춰 세우고 또 다른 동료의 이름을 말해준다. 마지막 호명은 의심과 정념이 최고조에 달한 파티에서 한차례 폭격이 지나간 뒤 마리안에 의해 발화된다. 내일은 애나와 함께 셋이서 최고로 행복한 날을 만들자는 말과 함께.


영화는 이상하게도 마리안이 아닌 맥스의 정체, 혹은 그의 이름과 얼굴의 일치에 훨씬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리안이 맥스에게 했던 대사들 중 두 번 반복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남편은 담뱃불을 붙이기 전에 아내에게 먼저 권한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모로코에서 부부의 역할로 서로를 만났을 때이며 두 번째는 마리안이 불안에 휩싸인 맥스를 외도하는 것으로 의심할 때이다. 반복되는 제스쳐들로 이루어진 이 영화에서 이 반복되는 대사는 마치 맥스의 역할을 일깨우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당신은 나의 남편 역할을 맡고 있으니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혹은 당신은 나의 남편인데 지금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고 있다, 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마리안의 신원이 중요해지고 그것을 의심할 때마다 사람들이 맥스의 이름을 불러 그를 멈춰 세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리안은 그들의 작전에 내러티브를 만들고 (포커게임을 중독자 수준으로 좋아하는 남편) 맥스에게 지속적으로 역할을 부여하는 사람이다. 과장을 보태보자. 마리안은 맥스를 맥스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호명에 답하는 맥스는 마치 마리안이나 비극적 운명을 대신해서 그에 응답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예정된 대답이나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하고 있기에 그런 것일까. 뒤를 돌아보는 맥스의 몸짓은 어딘지 피곤하고 힘겨워 보인다.


저메키스의 전작인 <하늘을 걷는 남자>는 말 그대로 직진하는 영화였다. 건물 사이에 연결된, 아니 차라리 그어졌다고 말하고 싶은 줄 위를 직진하는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영화 역시도 그 남자를 따라 계속해서 직진했다. 그런데 줄의 양 끝점에 도달한 남자는 언젠가는 직진을 멈추고 거기에서 내려와야 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얼라이드>는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직진을 멈출 수도 또한 감당할 수도 없는 남자의 영화다. 이 직진은 매끈하지 않고 어딘가 왜곡되어 있거나 아주 느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곡된 직진이라는 형용모순적인 말을 다소 고집스럽게 사용해보고 싶다.) 그는 계속해서 뒤늦은 호명에 응답하며 멈추고 뒤돌아보지만 그 미약한 노력은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멈춰 세우지 못한다. 맥스와 마리안의 방 안에 언제나 놓여 있던 3면의 거울이나 그들의 집을 둘러싼 3면의 창문, 혹은 전쟁중임을 암시하듯 X자로 테잎붙여진 창문들에서부터, 맥스가 마리안과 자신의 사진을 반으로 찢어냈을 때부터 이미 직진하는 파국은 이 형상과 제스쳐에 스며들어 있다. 맥스의 동선과 직진하는 선들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불길함은 영화 전체를 휘감으며 비극적 결말을 예고한다.


세 번의 호명을 세 번의 판타지적 장면에 대한 응답으로 보고 싶은 충동도 생긴다. 영화의 배열 순서를 따져보자면 독일 대사 암살 작전을 앞둔 아침 모래 폭풍이 불어오는 사막의 차 안에서 이루어지는 섹스, 폭격을 배경으로 한 출산, 파티의 즐거움과 절정에 달한 갈등을 폭력적으로 소급하는 폭격이 각각 호명의 앞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의 환상임이 분명해 보이는 이 장면들은 맥스와 마리안의 관계에 주요한 변곡점이 되는 장면들인데, 아득한 모래폭풍이나 하늘을 가득 매운 전투기들의 위협적이고 아득한 운동들 때문에 마치 꿈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짧은 침묵이 끼어있는 호명과 응답의 제스쳐는 지금 맥스를 꿈에서 깨우고 있는 중인 것은 아닐까. 세 번째 호명에 응답한 맥스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만 힘없이 반복하는 마리안과 이곳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이곳 역시 탈출구가 없는 꿈과 같다. 결국 맥스의 이름을 부르고 한 발의 총성을 남겨 마리안은 마침표를 찍고 맥스를 긴 꿈에서 깨우는 것은 아닐까.


만일 이것이 꿈이었다면, 맥스는 꿈속에서조차 마리안과의 안온한 시간을 좀처럼 허락받지 못한 것이다. 종종 차안에서 그들은 요원으로서 인사하거나 불안으로 휩싸인 채 사랑을 나누고, 성공한 작전에 안도하며 마지막 탈출을 함께하지만 그것을 그들의 안온하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불길한 모래폭풍이 차를 감싸거나 예정된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차 안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차 안은 그들을 투숏으로 담기 매우 힘든 공간이다. 이 특성이 모든 영화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얼라이드>에선 유독 두 사람의 숏-리버스 숏이 주는 감흥이 불길하게 여겨졌다. 둘의 결혼식 장면에서조차 맥스의 눈길을 받은 마리안의 표정은 한없이 비밀스러워 보인다. 마지막 비행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의 두 사람의 표정과 눈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혹은 시선은 거울에 반사되어 쪼개진다. 사실 두 사람의 가장 평온한 순간은 영화의 앞부분에 위치한다. 막 카사블랑카에 도착한 맥스는 그날 밤을 옥상에서 보낸다. 카사블랑카에서는 잠자리를 함께 보낸 뒤 남편이 옥상에서 잠을 자는 것이 관습이다. 마리안이 행복한 부부를 연기하기 위해 옥상에 따라 올라온다. 마리안을 바라보는 맥스의 옆얼굴에서 시작해 카메라는 불현 듯 화면을 쪼개지 않고 수평으로 트래킹해서 마리안의 얼굴을 보여준다. 맥스의 시선을 카메라의 운동으로 담아두려는 것 같은 이 장면만이 어떤 불안함이나 방해도 없이 두 사람을 직선으로 연결한다. 혹은 맥스가 마리안을 부르면, 거기에 마리안이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서로가 맥스이고 마리안이라는 사실이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았던 시간. 선으로 연결되지 않는 선. 맥스의 시선이 마리안에게 카메라의 운동과 함께 막 당도한 그 때에, 이미 멈출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은 예고된 것이 아닐까. 비극적이지만 아름답고,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카메라의 운동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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