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해보자. 유성영화 시대를 맞아 제작된 뮤지컬 영화 <춤추는 기사>를 관객들에게 처음 공개하는 날이다. 캐시 셀던(데비 레이놀즈)은 영화에 이어 이 무대에서도 여배우 리나 라몽(진 헤이근)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커텐 뒤에는 캐시가 있다. 그녀는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곡, ‘Singin' in the rain’을 부르고 무대 위의 여배우는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인 것처럼 관중들 앞에서 노래하는 흉내를 낸다. 이미 무대 뒤의 세 남자는 이것을 폭로하기로 작정한 참이다. 그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커텐을 열어젖히고 리나의 뒤에 캐시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장면이 주는 감흥은 매우 특별하다. 영화의 종착지인 이곳에서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 모든 방해를 뚫고 만나며 두 사람은 이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 앞에 서기를 결심했다. 그뿐인가. 데비 레이놀즈가 부르는 노래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럽고 감동적이다. ‘가짜 목소리’가 폭로되는 쾌감은 관중들의 유쾌한 웃음소리로 뒤덮인다. 모든 갈등은 끝난 것 같고 진실된 목소리는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 가짜이자 진짜인 목소리, 무대 뒤 캐시의 노래는 우리를 이상한 고민에 빠뜨린다. 리나의 목소리를 대신한 캐시처럼, 어쩌면 캐시의 목소리도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장면 역시 눈앞의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것은 불안이 아니라 흥미로운 구멍으로 남겨져 이 영화를 복잡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이미 뮤지컬 영화의 정점이자 고전이 되어버린 <사랑은 비를 타고>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에 대해 어떻게 더 말을 보탤 수 있을까. 데비 레이놀즈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지금,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이곳저곳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사랑에 빠진 진 켈리의 Singin' in the rain은 그것의 시작인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피어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에 관한 영화이다. 그런 영화들은 왜인지 관객들의 감수성을 조금 더 쉽게 자극하는 것만 같다. 무대 뒤의 모습을 욕망하기 때문이라고 해야할까. <사랑은 비를 타고>의 줄거리는 맨 마지막에 상영되는 <춤추는 기사>가 완성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 과정에서 무성영화 스타인 돈 록우드(진 켈리)와 배우가 되길 꿈꾸는 캐시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의 흥행을 시작으로 유성영화 제작이 본격화 되고 캐시는 유성영화에는 적합하지 않은 여배우의 목소리를 더빙하여 돈을 위기에서 구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그녀는 관객들 앞에서 진짜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밝히고 돈과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스튜디오 제작 시스템과 유성 영화 더빙 장면을 보여주며 허구로서의 영화 제작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순수한 마음과 진실한 예술을 그에 대비시켜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스크린에 나타나는 리나의 모습과 캐시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이 영화, 그것도 뮤지컬 영화라는 사실 때문에 그 모든 순수함과 진실함들은 다시금 (허구라고 말했던)‘영화’ 속으로 들어가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자신에게 뚫려있는 이 구멍은 영화에 풍부한 층을 만들어낸다.


<사랑은 비를 타고>안에는 영화 속의 영화인 <춤추는 기사>가 등장한다. 이것은 처음에는 무성영화로 기획되었다가 다시 유성영화로, 다시 뮤지컬영화로 그 형식이 바뀌면서 제목도 처음과 다르게 <춤추는 기사>가 되어 마지막에 완성된 판본이 상영되는 영화이다. 영화 안에서는 이 <춤추는 기사>의 무성, 유성, 뮤지컬 영화의 제작과정이 드러나는데 세 부분이 모두 흥미롭다. 먼저 인기 스타 돈과 리나의 차기 무성영화로서의 제작 현장을 볼 수 있다. 이때 돈은 막 캐시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파티에 댄싱걸로 참여한 캐시를 리나가 못마땅해하고 그녀를 해고시켜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돈은 지금 리나에게 몹시 화가 나있다. 그들이 연기하려는 장면은 프랑스혁명 시절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다. 카메라는 돌아가고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슬프고 애틋한 연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뱉는 말은 다르다. 이들이 지금 찍고 있는 영화는 무성영화이기에 그들의 말소리는 녹음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둘은 다투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의 장면을 찍고 있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이미지와 소리의 불일치가 있다. 이 장면을 보고서도 관객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진짜는 감춰지고 허구가 그들을 감동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What a glorious feeling!
What a glorious feeling!

그런데 이 영화제작은 곧 중단된다. <재즈 싱어>라는 유성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영화사적 사실이 여기에 끼어들어간다.) 때문에 동일한 시나리오의 영화가 동시녹음 방식으로 제작되어 한차례의 시사회를 갖는다. 마이크의 위치 때문에 촬영과정에서 소극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 판본의 흥미로운 점은 시사회의 상영에 있다. 리나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관객들이 목소리가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영사상의 작은 사고가 있어 오디오가 뒤로 밀리면서 소리가 이미지와 시간적으로 불일치한다. 리나의 입이 움직이는 장면에선 남자배우의 목소리가, 남자배우의 장면에선 리나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시사회장은 비웃음의 장이 되어버린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영화의 시나리오가 현대적인 뮤지컬을 중심으로 다시 쓰여지고, 프랑스 혁명기의 장면이 남자 주인공의 꿈속 장면으로 삽입되는 뮤지컬 판본의 <춤추는 기사>가 드디어 제작된다. 여기에 들어갈 브로드웨이 뮤지컬 장면이 꽤 길게 제시되는데, 세트를 적극 활용한 화려하고 현대적인 후반부의 뮤지컬 시퀀스가 그것이다. 그와 더불어 캐시가 리나의 모든 대사와 노래를 더빙한다. 마침내 <춤추는 기사>가 첫 상영을 갖고 관객들은 크게 감동한다.


<춤추는 기사>라는 영화의 제작과정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허구로서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영화 밖의 노력들을 보여준다. 무성영화 상영에는 감동적인 음악이 연주되고 여배우에 대한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목소리는 더빙된다. 그리고 이것과 대비되는 영화 바깥의 진실들이 있다. 진짜 사랑, 진짜 목소리, 진짜 인생. 그런데 그 생기넘치는 진실들은 유쾌하고 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제시된다. 유성영화 판본의 시사회가 있던 날 밤, 돈과 캐시와 절친한 친구이자 음악가인 코스모(브라운 도널드 오코너)가 해결책을 고민하다가 부르는 Good morning!!이나 뒤이어 비를 흠뻑 맞으며 돈이 부르는 Singin' in the rain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장면들이야말로 눈앞의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어디선가 갑자기 음악이 들려오고 주인공들은 춤추며 노래한다. 돈이 캐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텅 빈 영화 세트장으로 들어간다. 돈이 조명을 켜고 배경을 비추면 그들은 마치 영화 속 세계에 들어간 것처럼 아름다운 배경 앞의 아름다운 연인이 된다. 영화라는 가짜를 만들어내는 장치들을 통해 돈은 캐시에게 진짜 마음을 고백한다. 갑자기 음악이 들려오며 둘은 춤추고 노래한다. 이 장면이 아름답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진짜를 만들어내는 가짜. 그리고 가짜를 만들어내는 진짜. 게다가 <사랑은 비를 타고> 자신이 뮤지컬 영화라는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영화자체가 어느 한쪽이 가짜이고 어느 한쪽만이 의미 있는 진짜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돌이켜보니 배경음악을 연주하며 살던 돈이 영화배우가 되었던 것은 그가 스턴트 액션이라는 실제 몸의 사용에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다시 마지막 장면. 커텐이 열려 캐시의 모습을 보게 된 관객들의 반응은 유쾌하게 웃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에 화를 내지 않고 눈앞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나의 상황으로 받아들여 웃는다. 요컨대 모든 것은 표면이다. 그들이 <춤추는 기사>를 보며 나름대로 울고 웃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영화적 체험이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온전히 볼 수 없는 영화 <춤추는 기사>가 좋은 영화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리나의 목소리 대신 캐시의 목소리가 흘러나와도, 완성된 한 편의 영화는 자기 자신만의 표면을 갖기에 그것이 주는 감동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다소 부당하게 리나와 캐시의 상황에 많은 것을 겹쳐 대비시키고 있지만 허구와 진실이 결코 서로를 부정하면서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리나의 모습이 완전히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이 영화가 부정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에 빠져있는 대상은 단연 캐시인데, 리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춤추고 노래한다. 영화 속의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뮤지컬 시퀀스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담겨야만 하는 영화라는 표면의 형식. 이 끝없는 연쇄는 무척이나 복잡하고 아름답다. 삶의 진실들은 영화 속에 들어가서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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