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가 모여있다. 전쟁 후의 일본에서, 이제는 다 커버린 자식들을 하나 둘 씩 결혼시킬만한 나이다. 딸 미치코(이와시타 시마)를 시집보내기로 마음먹은 히라야마(류 치슈)는 친구가 소개해줬던 청년과 딸의 만남을 성사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다른 한 친구가 말을 막아선다. 히라야마가 너무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자신이 그 청년의 다른 만남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사실 히라야마가 너무 늦은 결심을 하는 바람에 미치코가 자신이 좋아하는 청년과의 혼사를 한번 놓친 다음이다. 계속해서 결혼이 미루어진다. 그러나 금방 밝혀지듯이 이것은 친구의 거짓말이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미치코의 결혼식날이다.


사뭇 건조하고 진지한 이 거짓말은 사실 앞선 거짓말과 반복을 이루고 있다. 이 세 친구는 중학교 동창으로 지금까지 종종 만나며 술자리를 갖는 편인데, 이 중 호리에는 최근 젊은 아내와 재혼을 했다. 이를 놀려대던 히라야마와 또 다른 친구 카와이는 어느 날 단골 술집 주인에게 오늘이 호리에의 장례식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젊은 아내와 재미를 보더니, 일찍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호리에는 나중에 이 말을 전해 듣고 히라야마를 거꾸로 놀려줄 것을 벼르다가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이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하지만 이 거짓말의 내용과 반복이 영화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유작 <꽁치의 맛>(1962)은 정갈하고 슬프다는 이야기가 평가의 주를 이루고 있는데, 반복되는 장면들과 화면의 구성이 정갈하다는 감상을 불러일으킨다면 ‘슬픔’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영화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된다. 아주 간단하게도 말할 수 있다. 이건 아버지가 딸을 시집보내는 영화다. 전쟁 이후의 변화하는 세계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듯이 영화에는 도시의 풍경과 큰아들 내외의 삶의 모습 등이 반복적으로 비춰진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주변의 젊은이들이 결혼하는 것을 바라보고, 우연히 재회하게 된 중학교 시절 선생님의 딸이 여전히 시집을 가지 못한 채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사정이 반복되면서 아버지는 초조해진다. 그리고 미치코를 시집보내기로 마음먹은 후 큰아들을 불러 의논하다가 아들의 회사에 다니는 미우라라는 청년에게 미치코가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시간과 마음이 엇갈려 혼담은 성사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맨 처음 소개한 장면에서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아버지가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곳에 끼어있는 거짓말이 그 감정을 완전히 반대의 것으로 만든다. 반복된 두 번의 거짓말에 보태서 두 번의 반복되는 대사 “기억이 나질 않는다.”가 이 감상을 완성시키는데, 그것은 딸의 시집을 어떻게든 늦추고 무산시키려는 은밀한 욕망의 슬픔이다.


두 번의 망각에서 시작해보자. 첫 번째는 딸에게 시집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이 때 우리는 이미 큰아들의 집에서 미치코가 미우라와 만난 장면을 보았으므로 미치코가 미우라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미치코는 아버지를 생각해서 집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왜 시집가지 않으려 하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미치코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버지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느냐고. 지금처럼 자기와 함께 사는 것이 더 좋고 행복하다고. 히라야마는 부정한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그런 말을 자신은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히라야마의 유일한 진심일지도 모른다. 다음의 대사는 미우라에게 결혼 생각을 물어보는 큰아들의 것이다. 아버지에게 사정을 전해 듣고 미우라를 만나서 큰아들은 결혼 상대를 소개해주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미 미우라에게는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 큰아들은 사실 소개해주려던 것이 자신의 동생 미치코였음을 밝힌다. 미우라는 아쉬워하며 이렇게 말한다. 전에 분명히 동생 미치코가 결혼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느냐고, 그때는 자신도 미치코에게 마음이 있었다고. 큰아들은 그런 적이 있었냐며 놀라워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여기에는 아버지의 진심과 기회의 실패가 있다.


그리고 거짓말들. 히라야마가 들었던 두 번째 거짓말은 딸을 시집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 선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혹시 이번 혼담도 성사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함으로 포장된 어떤 기대가 지속되는 아주 짧은 그 시간이 사실은 히라야마의 거짓말에 대한 친구 호리에의 응수라는 것이 내겐 흥미롭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히라야마는 이 말을 듣기 위해 최초의 거짓말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그 거짓말의 내용도 이상하다. 딸 같은 아내를 얻어서 좋아하더니, 결국 기력이 다 쇠해서 죽어버렸다는 식이다. 나는 종종 오즈의 영화를 두고 정갈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편인데, 영화의 정서는 가끔씩 음란하다. 그렇게 넘실거리는 마음들이 정갈한 형식 속에 있을 때,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정갈함이 아니라 삐져나오는 마음인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반복되는 거짓말과 망각은 사실은 딸을 시집보내야겠다는 표면적인 결심이 아니라, 딸을 시집보내고 싶지 않다는 은밀한 욕망의 과격한 표현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논리적인 마음이 아니다. 히라야마도 자신의 중학교 시절 선생님의 딸을 보면서, 진심으로 미치코의 미래를 걱정한다. 주변의 결혼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미치코가 결혼하는 미래를 흔쾌히 그려보았을 것이다. 또 영화가 공들여 보여주는 큰아들부부의 삶이 언젠가 미치코의 미래가 되는 것이야말로 아버지에겐 더할 나위 없는 안심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오카다 마리코의 그 모습이란!) 그러나 원하지 않는다. 사실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짓말은 재빨리 수습되고 딸의 결혼식 당일로 장면은 넘어간다.


딸의 결혼이 무산되기를 바라는 욕망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바꿔 말하면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딸이 결혼하면 영화는 끝난다. 아버지는, 그리고 오즈는, 그리고 오즈의 영화는 지금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끝나지 않을 영화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결국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영화는 끝나야 하고 딸은 시집을 가야한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은밀하게 욕망을 갖고, 또한 그것이 안되는 줄 알기에 결국에는 욕망이 감춰진다. 이것이 주는 슬픔은 단순히 노년의 쓸쓸함과 변화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한 아버지의 서사를 초과한다. 딸의 결혼식 날 아버지는 친구들과 다시 모여 시덥잖은 이야기를 한다. 딸이건 아들이건 상관없이 언젠가는 부모의 품을 떠난다, 결국 인생은 외로운 것이다, 따위의 말이다. 히라야마는 문득 몇 번 찾았던 술집으로 홀연히 떠난다. 마담은 오늘 검은 양복을 입은 것을 보니 장례식에라도 다녀온 것이냐고 묻는다. 히라야마는 유명한 대사를 말한다. “그 비슷한 것.” 딸의 결혼식은 장례식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 영화는 끝난다. 집에 돌아와 조용히 술주정을 하던 그는 미치코가 분주히 돌아다니던 주방으로 가 의자에 앉는다. 그렇게, 위대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끝난다. 그는 끝을 알았던 것일까. <꽁치의 맛>은 마치 그것을 알았던 사람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슬프다.


(최근에 문득, 세상에는 ‘끝나지 않을 영화’와 ‘끝나는 영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상수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그 영화는 ‘끝나지 않을 영화’처럼 느껴졌다. 혹은 페드로 코스타의 <반다의 방>이 그렇고, 차이밍량의 영화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도 여기에 넣고 싶다. 반면 ‘끝나는 영화’들도 존재하는데, 히치콕이나 오즈의 영화가 여기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히치콕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사악하게 끝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현기증>은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에 올랐지만, 그리고 매우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나지 않는 영화다. 여자가 죽어야 끝나는 영화. 다시 말하면 끝나기 위해 여자가 죽는 영화. 오즈의 영화는 끝나야 할 것을 아는 영화이고, 그것은 영화감상을 자꾸만 슬프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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