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텍스트 그 자체에 있어서 알튀세르의 영향을 받은 영화 이론은 '리얼리즘' 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독단적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문화 연구에서 알튀세르 학파를 이끌어 나가는 추진력은 리얼리즘 비판이었으며, 그 비판 경향은 단순히 '리얼리즘적인 것'을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자기 반영적인 것'을 '혁명적인 것'으로 등식화시키는 것이었다. '할리우드'와 '지배영화'라는 말은 시대 역행적이고 수동성을 유도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약속어가 되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일종의 복화술사처럼, 그리고 영화 산업은 자본가의 무릎 위에 올려진 일개 꼭두각시처럼 간주되었다. 한편 '해체적인 것'과 '혁명적인 것'의 등식화는 <시네티크>의 논문 속에서 과거 및 현재의 거의 모든 영화들을 '이상주의적'인 것으로 배척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단지 지가 베르토프에 의한 몇몇 영화, 고다르-고랭의 공동 작품, 그리고 <지중해 Mediterranee>와 <마드리드의 10월 Octobre a Madrid> 같은 몇몇 프랑스 독립 영화들만이 진정으로 유물론적인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이들 두 등식화는 모두 자세히 검토되어야 한다. 리얼리즘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반동적인가? 이것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어떤 리얼리즘을 말하는가에 크게 좌우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리얼리즘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어 왔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리얼리즘 대신 우리는 무수한 '리얼리즘들'을 발견하게 된다.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19세기의 특정 예술가 및 비평가들에 의해 주조된 신조어로서, 원래는 소설과 회화에 있어서의 낭만주의 및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개념적 진공 상태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서양의 현실 모사 전통 - 아우어바흐에 의해 너무나도 눈부시게 개관되었던 - 이 뒤늦게 개화하여 나타난 것이었다. 20세기의 여러 운동들은 '리얼리즘' 혹은 이와 비슷한 용어들로서 스스로를 규정지었다. 초현실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적 리얼리즘, 네오리얼리즘. 우리는 이 용어를 엄격하게 정의 내리려는 시도에서 초래되는 지적 난국에 빠져들지 않겠다. 대신 이 용어의 다양한 정의들 속에 담겨 있는 여러 일반적인 경향들을 열거해 보았으면 한다. 예를 들어 몇몇 정의들은 어떤 작가나 사조의 열망 또는 기획 - 지배 규범이나 기존 문학(영화) 관습에 대한 교정책으로서 - 과 관련이 있다. 때때로 이러한 '교정책'은 도덕적 혹은 사회적 색채를 띠는데, 아우어바흐는 소설에서의 리얼리즘을 "일상 현실에 대한 진지한 취급"과 "광범위하면서 사회적으로 열등한 인간 집단들을 문제 제기적 - 실상적 재현의 소재로 부상시키는 일"과 연관짓는다. 또한 이러한 교정책은 형식적일 수도 있고 ('질의 전통 tradition of quality'의 인위성에 대한 누벨 바그의 공격) 사회적일 수도 있으며(전후 이탈리아의 참모습을 보여 주려고 시도했던 네오리얼리즘) 혹은 양자 모두일 수도 있다(기존 브라질 영화의 사회적 주제 및 영화 형식 모두를 혁신시키려 했던 시네마 노보 Cinema Novo). 리얼리즘의 다른 정의들은 '그럴 듯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일' - 즉, 문화적으로 통용되는 신빙성 있는 플롯 유형 및 일관성 있는 인물 유형에 맞추어 허구를 구축하는 일 - 과 보다 관계가 있다. 또한, 이러한 정의는 장르 규칙의 준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칠흑 같은 밤, 비에 젖은 도로 위에서 주인공 탐정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 속의 자동차는 그 주인공을 깔아뭉개 버리라고 '사실적으로' 기대될 수 있다. 실제 생활에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제아무리 낮다 하더라도 말이다. 또 하나의 관련된 정의는 독자 혹은 관객의 믿음과 관계된다. 그것은 일종의 주관적 반응의 리얼리즘으로서, 현실 모사의 정확성보다는 환영적 기법의 세밀한 조율에 보다 관심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순전히 형식주의적인 정의에서는 모든 허구 규칙들의 관습적 성격을 강조한다. 따라서, 리얼리즘을 어떤 주어진 역사 시점에서 강렬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형식적 장치 및 관습들의 집합으로 가정한다.

(p.46~)


(요즘 가장 고민이 많이 되는 지점이라 옮겨보았다. 흔히 '낭비되는 숏 없음'으로 통칭되는 고전적인 방식의 영화가 모던한 영화의 준거틀로 작용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되는데 뭐랄까 상당히 피로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르주아적인 제작방식이라기 보다 내게 이러한 형식은 영화란 이미 태생적으로 유물론적인 예술이라는 것의 반복된 표현으로 느껴진다. 전달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숏과 숏의 연쇄로 전달해야만 하는. 그래서 고전적인 방식이란 모든 숏이 서사에 봉사하는 거라고 쉽게 말하곤 하지만 연쇄가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반대된 방향을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이에 대해 탐구하고 알아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여기서 가장 망설이게 되는 것은 역시 내게 데이터베이스?가 없는 것. 아직 보지 못한 영화가 많다...그리고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어서 정교하게 숏바이숏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많이 들고 있달까. 고전적인 것이 매우 보수적인 것으로, 부르주아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완벽한 짜임의 영화를 봐! 라고 말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꼈다고 했지만 반대로 스필버그의 근작이라던지, 이스트우드의 근작이라던지, 혹은 존 포드 영화를 다시 보는 것 등등을 통해서 - 특히나 장르영화의 경우에 - 영화가 가지는 필연적인 틈새, 여백, 잉여, 어긋남 등에 주목하고, 구조 자체에 기입된 자기반영성, 놓인 자리에의 환기, 분열된 흔적을 보는 것에도 주춤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쪽의 경우 역시 미리 짜여진 비평의 틀에 영화를 맞추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물론 정말 중요한 논의이지만 내가 거기에 갇혀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투정에 가까워 보이지만, 아직 고전영화의 활력을 힘껏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왜 나는 이렇게밖에 못볼까? 라는 자책이라고 말하면 제일 가까울 것 같다. 내가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에 유독 힘겨워 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가 아닐까 싶고. 물론 장 마리 스트라우브가 <아파치 요새>를 보고서 가장 브레히트적이라고 말했다는 일화 같은 것 앞에서는 약간 생각이 멈추고 때때로 질투심 같은 것도 좀 든다. 나도 그런 말을 해보고 싶다. - 그 이유는 <아파치 요새>의 마지막 부분에서 존 웨인이 헨리 폰다의 모자를 씀으로서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 생각해보면 이것이야말로 알튀세르가 브레히트를 독해했던 방식이 아닌가 싶은데, 피콜로극장이란 글에서??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다시 찾아봐야지. 영화를 '본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영화의 생산적 노동: <카메라를 든 사나이>

1년 뒤 소련에서는 지가 베르토프가 예술을 생산으로서 그리고 생산과의 관련 속에서 보여 주는 영화, 즉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를 만든다. 베르토프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비록 모든 텍스트가 생산적 노동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모든 텍스트가 이러한 작업의 흔적을 동등하게 드러내 보여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환영적인 구경거리에서는 예술의 질료들끼리의 이음매가 매끈하기 때문에 작업 흔적이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실물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캔버스 위의 붓 자국을 제거하여 작업 흔적을 없애 버리듯, 환영적 영화 감독들은 제작 과정의 흔적을 은폐시킨다.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 - 심지어 영화 제작 환경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들 - 과 달리, 베르토프의 영화는 스스로 생산 과정을 표면에 드러낸다. 제작 흔적이 영화에 달라붙어 있는데, 그것은 - 발터 벤야민이 다른 맥락에서 말했듯이 - 도공의 손자국이 도자기에 들러붙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p.128)


재롱을 부리는 카메라
재롱을 부리는 카메라


(<고다르X고다르>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이 이름 - 지가 베르토프 집단 - 의 유래가 된 감독은 1918년 소련에서 키노-글라즈 라는 이름의 유명한 뉴스릴 그룹을 설립했으며 이상하게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기술적 에너지를 갖고 있고, 카메라의 비전이 말하는 진리와 눈이 말하는 진리의 차이들을 열정적으로 추구했다는 점에서 고다르와 매우 유사한 영화 방법을 창조했다. / 사람들이 현재 보는 힘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을 우리는 매우 강하게 느낀다. 읽기만 하지, 더 이상 이미지를 보지 않는다. 세계를 다시 보아야 하고, 세계를 보는 방법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지가 베르토프였다. - 1972년 장 뤽 고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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