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밀정>을 한 번 더 보고나서 글을 쓰려고 했으나 시간과 마음이 맞지 않아서 메모로 일단 남기려고 한다. 그 전에 다른 얘기들 먼저 하고. (스포일러 주의를 써야할까...)


한심함이 극에 달해 집에서 거의 움직이지도 않은 채로 지내다가 미뤄둔 미드 몇개를 보았다. 그냥 몇 편 본 정도는 아니고 <왕좌의 게임> 시즌1~시즌6을 보고 <베이츠 모텔> 시즌4, <트루 디텍티브> 시즌1, <워킹데드> 시즌1 중간 정도. <왕좌의 게임>은 이제서야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대단했다. 장점들과 좋았던 순간들을 일일이 나열하기는 힘들겠지만 티리온의 고요한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뭔가 더 써보려고 했지만 망설여질 정도로 아직은 이 감흥을 그냥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막연히 좋았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마음을 아리게 했었던, 운명을 기어코 받아들이고 또 기어이 그걸 넘어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인물과 사건을 엮어가는 특정한 종류의 서사와 그것을 TV드라마의 형태로 제작하는 일종의 고전적인 방식이 주는 속수무책의 감동에 대해 생각했다. 


시즌5로 완결을 앞두고 있는 <베이츠 모텔>의 시즌4는 개인적으로는 다소 늘어진다고 생각했으나 9화와 10화는 공들인 것이 느껴졌다. <베이츠 모텔>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시즌2의 브래들리가 떠나는 장면이었는데, 소년과 청년 사이의 시기를 지나는, 노먼의 거의 유일하게 서정적인 순간이라 그랬던 것 같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밤, 옅은 안개 속에 멀어져가는 첫사랑, 한번쯤은 간직하고 싶은 비밀과 상처들. 드라마가 공들이고 정체성으로 내거는 부분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게 <베이츠 모텔>은 어쩐지 그 장면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트루 디텍티브>는 역시 흥미로웠고 개인적으로는 매튜 매커너히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생각한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더불어서. 다만 영자원에서 상영할 정도로 동시대적으로 뛰어난 영상물인가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망설여진다. 


더 쓸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하도 한심하게 지내서 별게 없는 것 같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다가 반납기한을 한참 넘겨서 다 못읽은채로 반납했다. 벌써 두번째 시도였다. 덕분에 밀레니엄은 읽지도 못하고 반납해버렸다.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에 실린 남다은 평론가의 글은 <아가씨>와 <비밀은 없다>를 함께 묶어서 쓴 일종의 비판론이었다. ('여성영화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호평일색인 두 영화에 대해서 불만점들은 떠다녔지만 정돈된 비판론은 잘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매우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비판론을 가지고 좋은 글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는 언제나 씁쓸한 일이다. 남다은 평론가의 열의에 찬 여성영화 평문을 보고싶다. 책이 하도 안읽어져서 다시 미미여사의 소설을 빌렸다.


마지막으로 <밀정>.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기대를 아주 많이 했었다. 역사를 다루는 수많은 매체들이 끝내 무너지고 말아버리는 부분들이 있는데, <밀정>은 흔들리고 의심하는 인간을 통해 일종의 구도 자체를 흔들어 버리는 영화가 되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비슷한 언급을 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는 수업시간에 '황옥'이란 인물에 대해 배워서 알고 있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수많은 특정되지 않는 기록들 중에서 독립운동가인 어떤 인물과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며, 얼마간의 행적은 묘연하지만 끝내 확정지을 수 없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식민지 조선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흔들리는, 알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역사영화', 특히나 '국뽕영화'라는 장르아닌 장르가 존재하는 한국에서 이러한 영화들은 대부분 도식적이다. 이쪽이 있으면 저쪽이 있고, 일본놈은 나쁘고 (<암살>에서의 묘사) 독립운동가들은 선하다. 영화의 대부분은 그 고난과 역경에 맞춰지고 결국 특정한 일을 완수하면서 끝난다. 완성의 형태가 아닌 경우에도 영화는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스크린 밖으로 '선조들의 희생'과 같은 일종의 교훈을 전해주려 부산을 떨며 끝이난다. 이런 영화들은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도 없지만 앙상하고 빈곤하다. 게다가 충분히 교훈적이지도 못하다. 판에 박힌 도식적인 구조를 반복하면서 결국 그 '독립운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조차도 지탱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밀정>의 전반부는 충분히 흥미롭다. 조금 흥분이 될 정도였다. 글을 쓴다면 '문을 여는 영화'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문의 열림과 닫힘, 반쯤 열린 문, 문의 이쪽과 저쪽, 문을 여는 행위로 무너지는 경계. <밀정>의 전반부는 콕 찝어 말해도 될 정도로 의열단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자금을 모으고 폭탄을 사들이는 것 정도로만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더 관심이 있는 쪽은 문을 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문을 열어야만 할 수 있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이다. 무엇이 성공하고 실패할지, 혹은 누구를 믿어도 되고 누구는 믿으면 안되는지, 문 저편에는 동지가 있는지 적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들. 그래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 문을 열어야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라고, 다시 말하자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퉁치고 넘어가는 '독립운동'의 어느 한 면모인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이 영화의 제목처럼 그것이 '밀정', '첩자'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질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모두 기차에 탄다. 기차에는 문이 많다. 조금 성긴 부분은 있을지라도 충분히 흥미로우며 자기가 축조해온 방식을 확실하게 언급하는 장면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이정출(송강호)이 기차 밖으로 뛰어내리고 남은 단원들은 역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갑자기 문이 사라진다. 등장해도 문은 영화 <밀정> 속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잊은 것처럼 맥이 없다. 그러다가 영화는 점점 빠른 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다. 오로지 죽기 위해서 그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연계순(한지민)도 문제였고 전반부에서부터 꾸준히 거슬렸던 폭력의 묘사도 문제였지만 법정 장면과 짝을 이룬 플래쉬백이 나왔을때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정출의 행동의 동기와 향방을 알 수 없고 오로지 그의 문을 여는 행위를 통해서만 그를 볼 수 있다고 말했던 영화는 별안간 변심한 듯이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활력으로 가득찼던 영화는 오로지 이 '설명된' 동기로 수렴되며 납작해진다. 


처음에는 이 순서를 반대로 가져가면 영화를 긍정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렇게 수렴되는 내용을 가진 영화이지만 풍부한 결이 있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한번 더 보면 생각이 바뀔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떻게든 서사로 수렴되지 않는 이상한 에너지가 있는 장면이 있다는 것과 장점이 있는 장면들이 결국에는 한 점으로 귀속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여간 한국영화들이 버틸 수 없는 지점이라는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우리가 (사실은 텅 비어있는 기호에 다름아닌) '독립운동'을 이해하는 현재와 같은 방식은 오히려 그것을 더 앙상하게 만들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심지어 언제나 카타르시스를 경유해서 이루어지는 영화적인 재현으로밖에 그것과 만나고 있지 않나. 훨씬 더 많은 삶의 모습과 훨씬 더 많은 방법론들이 치열하게 역사를 매꾸고 있다. 어떻게 함께 하며 어떤 것을 가지고 어떤 싸움을 할 것인지 고민한 수많은 시간들이 모두 '독립운동사' 안에 들어있다. 특히 공산주의 운동을 빼놓고는 독립운동의 반쪽밖에 설명할 수 없다. 각지에 흩어져서 꾸준히 이어져나간 여성운동은 또 어떻고...


아무튼 아쉬운 마음에 이것저것 써보았다. 급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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