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논란 속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치러졌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 수상과 더불어 87회의 웨스 앤더슨이 그랬듯이 조율과 종합이라는 감독의 자리를 다수 스탭들의 수상으로 증명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조지 밀러 (이냐리투가 2년 연속으로 감독상을 받음으로써 이제 ‘감독상’은 주목할 가치도 없어보인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첫 수상과 캠퍼스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헌팅 그라운드>에 대한 주목과 같이 재밌고 의미 있는 순간들이 드물게 반짝였다. 그리고 ‘각본상’과 ‘작품상’을 받은 영화 <스포트라이트>팀은 마치 영화 속의 ‘스포트라이트’팀이 그렇듯이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빛나는 멋진 사진을 남겼다.



미국 3대 일간지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취재팀인 ‘스포트라이트’팀은 가톨릭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추행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했고 이를 기사로 써서 세상에 알렸다. 이것이 <스포트라이트>의 내용이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했을 때 ‘현지화’라는 제목의 우스개소리가 돌아다녔는데, 음험한 신부의 웃음과 아이들의 울부짖음같은 성추행 상황에 대한 노골적 묘사, 기자들과 가톨릭 교회와의 전면적 마찰, 이러한 상황에 굴하지 않는 소시민적 영웅 등이 버무려진 끔찍한 내용이었다. 이는 과도하게 패턴화된 한국영화에 대한 조롱이기도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스포트라이트>가 선택한 방법에 대한 동의와 칭찬이기도 했다.


이 영화가 이해하는 기자란, 알게 된 것을 폭로하기 위해 외압에 맞서 싸우고 눈물겨운 분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더 알고 덜 아는 것 사이에서 진동하며 취재의 범위를 넓히고 흩어진 정보를 모아 종합하는 사람이다. 영화의 주인공들 역시 그렇게 믿는 것 같다. 그들은 신문사 건물 내부와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흩어진 점들을 찾아 성실하게 잇는다. 카메라는 그들이 그리는 동선을 따라가며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보고 다가가거나 멀어진다. 또는 덩그러니 남겨지거나 비워진 공백, 막혀있거나 트여있는 공간들을 통해 취재상황을 보여준다. 겉에서는 알 수 없는 고뇌나 흩어지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오로지 이 움직임에 기자라는 직업의 핵심이 있다고,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앞에서 ‘직업윤리’라는 단어는 어딘지 심심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이 움직임을 추동하는 것이 이들의 직업윤리만은 아닌 것 같다.


한명의 사제에서 시작해 보스턴 전역의 87명에 달하는 성추행 가해 사제를 알아냈고 또한 추기경의 묵인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까지 얻은 상황에서 팀장 로비(마이클 키튼)는 이것보다 더 큰 이야기를 써야 체계를 고발하는 데에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기사 발행을 보류한다. 새로 부임한 편집장 배런(리브 슈라이버)도 같은 입장이다. 더 큰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기사는 쉽게 묻히고 반향은 작을 것이다. 교회 측을 변호했던 변호사 맥클레시에게 로비가 가하는 일종의 협박은 두 개의 기사거리를 들려주는 것인데, 하나는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추행의 전모를 밝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은폐하는데 공조한 변호사에 대한 것이다. 만약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하고 기사를 쓰게 추동하는 기자정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실을 알리려는 신념에 있다기보다 더 큰 그래서 더 강력한 이야기에 대한 끌림과 욕망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로비는 이야기 쓰는 사람으로서 변호사에게 가할 수 있는 협박을 했지만 그는 결코 그런 기사는 쓰지 않을 것이다. 그는 더 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쌓아올려진’ 이야기의 본질은 공감이 아니라 종합에 있다. 어떤 사건을 안다는 것 역시 그러하며 여기에 도달하고 나서야 우리는 이 ‘더 큰 이야기’ 안에 윤리적인 성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떨어진 점처럼 보이는 개별적인 사건에서는 보이지 않는 토대가, 그 점들을 서로 연결하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재단하고 소급하지 않는 태도를 윤리적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요컨대 욕망 안에는 언제나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들어있다. 좋은 기자란 자신의 욕망이 세계의 어느 한 귀퉁이를 잘라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포함할 때 충족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스포트라이트>가 추구하는 영화적 활력이란, 심지어는 시각적인 쾌감조차도 사건의 자극적 재현과 전시에 있지 않고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순간들을 잇는 움직임의 연쇄에 있다. 취재가 멈췄던 그날 아침, 기자들 앞에 늘어선 텔레비전에는 훗날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고 일컬어지는 극단적 폭력의 전시에 다름아닌 9.11테러 장면이 반복해서 비춰진다.


마침내 기사가 보도되었을 때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개러비디언(스탠리 투치)은 스포트라이트 팀의 기자 마이크에게 계속 당신의 일을 해달라고 말한다. (“Keep doing your work.") 그리고 그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나 자신의 일을 계속한다. 긴급한 일과 끈질긴 일. 어떤 결과가 올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한다. 그들이 그리는 동선은 결코 순탄하지 않고 미리 정해져있는 아름다운 모양도 아니지만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대하고 그곳에 뛰어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건과 관련된 몇 가지 단서를 과거에 놓쳤던 로비의 눈은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으로 흔들린다. 편집장은 이런 말로 위로와 격려를 대신한다. 우리는 대부분 어둠속에서 헤매며 갑자기 불이 켜졌을 때의 부끄러움은 공평한 것이라고. 우리가 그려온 선은 대부분은 돌아보면 부끄러운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선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인 것이 아닐까. 제보를 알리는 전화벨소리가 침묵을 깨며 이에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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