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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는 전시가치가 제의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제의가치가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제의가치는 최후의 보루로 물러서서 마지막 저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마지막 보루가 바로 인간의 얼굴이다. 그 초창기에 초상 사진이 사진의 중심부를 이루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이미지의 제의적 가치는 멀리 있거나 이미 죽고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거의 의식적인 행동에서 마지막 도피처를 찾았다. 초기 사진에서 아우라가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간 것은 사람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에서이다. 초기 사진에 나타나는 멜랑콜리하고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의 비결은 바로 이러한 아우라이다. 그러나 사진에서 사람의 모습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자 비로소 전시적 가치는 처음으로 제의적 가치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 아제이다. (Eugene Atget, 1857~1927) 아제가 지니는 비견할 수 없는 의의는 그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1900년경의 파리 거리를 포착했다는 점에 있다. 그가 마치 범행 현장을 찍듯이 파리의 거리를 찍었다고 한 말은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다. 범행 장소에는 사람이 없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사진촬영은 아제에 와서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이 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사진의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 의미이다. 아제의 사진은 특별한 수용 태도를 요구한다. 자유로이 부유하는 명상은 더이상 이러한 사진에 부합되지 않는다. 아제의 사진은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한 사진에 이르기 위해서는 관찰자는 어떤 특수한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화보신문들(illustrierte Zeitungen)이 그 관찰자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주기 시작하였다. 그 이정표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화보신문들에서는 최초로 설명문구(Beschriftung)가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사진의 그러한 설명문구가 그림의 제목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사진의 그러한 설명문구가 화보의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지침들은 그 후의 영화에 이르러서는 한층 더 분명하고 강압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는 개개 화면의 의미가 그것에 선행한 다른 화면들의 연속에 의하여 미리 정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p.58~)


(1936년)


- 아제의 사진들


발터 벤야민 선집 2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도서출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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