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학기 과제로 7장짜리 서평을 쓰고나니 긴글을 쳐다보기 싫어졌다...


- 하라 세츠코 특별전에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초여름>을 봤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 영화의 한문 제목은 맥추, 보리의 가을이라는 뜻이다. 보리의 가을은 사람의 초여름이라고 한다. 가을과 여름, 그래서 연상되는 봄과 겨울. 사람의 인생과 흘러가는 삶 그리고 묵묵히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이 마음속에 가득 남았다. 어느 박물관에서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을 한다고 해서 보러갈까 했다가 더위에 지쳐 그만두었다. <번개>가 보고싶었는데. 어쨌든 마지막 장면을 보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생각나서 이 영상을 찾아보았다. 


- 처음 제작소식이 들렸을때부터 기다렸다가 <도리를 찾아서>를 보았다. 영화를 분석하고 분류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번잡하고 때로는 버겁게 느껴지나보다. 확실히 <도리를 찾아서>를 보고 픽사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장애'인 성질들이 캐릭터들의 객관적인 상태이며 그로 말미암은 어두운 구석, 불가능, 한계, 망설임들을 끝내 극복하고 넘어가는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며 우리는 장애를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계속해서 배워가야 한다. 생각해보면 <니모를 찾아서>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도 그런 부분들이었다. 캐릭터들의 '성장'과 서로에 대한 '이해'가 주된 서사의 내용이지만, 멀린을 비롯한 그 누구도 대신 져줄 수 없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니모의 장애와 그로부터 비롯되었을, 종종 망설이고 빨리 한계를 정하는 니모의 성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다른 이를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니모는 그것을 그대로 간직한채로 <도리를 찾아서> 속으로 헤엄쳐 들어온다. 니모가 도리를 이해한다는 사실과 그 방식이 내게는 일반적인 이해보다 훨씬 큰 감동을 준 것 같다. 우리 삶에서 어둠과 그림자, 불안함과 우울함이 넘어가야 할 산이 아니라 함께 가야하는 감정, 내 중요한 구석들이기에, 불안해하고 종종 울적해해서 생기를 잃은 듯 보이는 도리가 나는 조금 더 아름다워보였다. 길은 잃어도 된다. 잊을 수 없는 것만 있다면.


- 자크 리베트 감독의 <지상의 사랑>을 보고 나오다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떠올렸다. 여자들과 연극. 리베트 영화에 대해 심각할정도로 무지하기 때문에 연결짓기는 민망하지만 대신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발렌틴이 사라지기 전 산행의 대사들이 분명히 너무나 모호하여 그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렸다고 기억했는데 다시 보니까 대사가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받았던 감흥은 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시작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 <아웃원>을 결국 보지 못했다.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비가오는 날 아침 그 소식을 들었다. 더없이 슬픈 일이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 뜬금없이 레너드 코헨의 <chelsea hotel no.2>에 꽂혔다. 그 이름을 처음 들었던게 언제였더라. 고등학교 1학년때 토요일마다 했던 클럽활동이 있었다. 매주는 아니었던걸로 기억하고. 어쨌든 운동을 하거나 공예를 하거나 했던 시간이었다. 독립영화부 라는게 있어서 갔더니 10명도 안되는 애들이 모여있었고 선생님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앉아계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선배중 한명이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재학중이라 가끔 그 선배가 와서 단편영화를 틀어주곤 했다. 그때 김종필 감독의 <불을 지펴라>를 보면서 3J에 대해 들었고, 아마 그때가 재니스 조플린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때가 아닐까 싶다. 대학교 근처에 있는 돈까스 집에 대문짝만하게 그녀의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이 걸려있기도 했다. 어쨌든 가끔씩 찾아들었지만 그리 즐겨듣지는 않았던 재니스 조플린이지만 (생각해보니 <몽상가들>에서 에바 그린이 듣고 또 듣는 레코드가 재니스 조플린이던가) 그녀를 기억하는 노래가 자꾸 생각난다는게 참 새삼스럽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쉽게 느껴지다가도 또 너무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잊은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을 때 조금 괴롭다. we are ugly but we have the music.우리에겐 음악이 있을까. 오늘은 너무 우울해서 더운 거리를 걸으면서 나에게는 영화만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직까진 비극적인 짝사랑으로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 오랜만에 여수에 다녀왔다. 왜 바다를 보고싶어하는 것일까. 여행지에서 혼자 다니면 가끔 1인분을 팔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럴수록 1인분을 공략하는 식당도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게장백반을 혼자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돌산대교 건너편 카페에서 바다만 하염없이 보다가 왔다. 


- <부산행>을 봤다. 허문영 평론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를 기다렸다고 알고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모르겠다. 사실 다 떠나서, 딸이 아빠는 아빠밖에 모른다고 말한 이후에 왜 마동석 캐릭터가 아버지의 희생 운운하는 대사를 해야 했던건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특정한 부분에서 발끈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코 타협한적 없던 작가의 영화에서 왜 이런 종류의 정당화를 봐야 하며 왜 관객이 책임 없음과 희생에의 수락을 강요당해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다른 이들의 욕망을 이해하는 방법을 몰라 자기 방식대로 살아온 이른바 '아버지'들에의 긍정을 언제까지 한국영화에서 봐야 할까. 한국같은걸 끼얹었나 싶었다. 어쨌든 보고 난 이후에야 보고 싶었던게 뭘까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뒤엉킨 비극과 아주 나쁜 캐릭터, 조용한 새벽과 번잡한 열차. 그리고 이것들이 담긴 얼굴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얼굴, 그게 단순한 클로즈업이 아니라는 건 이번 영화로 증명된게 아닐까. (허문영 평론가의 <사이비>평론을 떠올린다면.) 어쨌든...<서울행>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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