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가장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소식 중 하나는 강남역 살인사건이다. 사건을 둘러싼 모든 말들은 논쟁적이었고 또한 귀담아 들어야 할 의견들도 많았지만 그중에서 내가 유독 멈칫거렸던 지점은 조금 다른 데에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또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쏟아져 나온 대책들 중 ‘남녀화장실 분리 강화’라는 게 있었다. 사건이 공용화장실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분리된다고 해서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여성혐오’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강력범죄들에 대한 규제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의 한심함은 제쳐두고, 이 논란은 나에게 예상치 못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분리를 강화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지적하는 일은 쉽지만, 누군가에게 ‘공용화장실’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서두가 길었다. 나는 수많은 가지들을 친 후에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찾아 읽을 수 있었다.


<트랜스젠더의 역사>는 미국에서 젠더와 여성학을 가르치는 수잔 스트라이커의 책 <Transgender HIstory>를 번역한 책이다. 그리 두껍다고는 볼 수 없는 이 책은 미국에서의 트랜스젠더 운동과 그것이 갖고 있는 고유한 결을 끝까지 놓지 않으면서 다양한 성소수자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들을 가로지르는 지점들을 섬세하게 기술해놓은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번역자들의 애정도 대단해서 나는 그들이 그랬다는 것처럼 자주 울컥했고 그래서 자주 멈춰야만 했다. (애정어린 번역이 줄 수 있는 감동이 곳곳에 묻어있다.) 화장실 이야기를 하며 글을 시작했으니 옮긴이 글을 당겨 말해야 할 것 같다. 옮긴이 글에는 한국에서의 트랜스젠더 운동의 간략한 역사가 기술되어있는데, 2006년 발족해 활동을 이어나간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의 활동은 젠더 이분법으로 구조화돼 트랜스젠더퀴어가 사용하기 힘든 화장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단순히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것을 말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이라는 공간 구조가 어떻게 젠더 이분법을 강화하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제하는지는 밝히는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보았던 개인적인 발화들은 트랜스젠더인 자신에게 공용화장실이 줄 수 있는 안심과 때로는 도피처로서의 공간성에 대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많은 것이 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시작이었으며 책의 끝이었던 화장실, 젠더 이분법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며 나 자신의 삶에서도 당연시되어온 그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로 인해 시작할 수 있는 젠더의 분리 그 자체에 대한 생각. 그것을 풀어갈 수 있는 지도를 이 책은 보여준다.


책의 목차는 간단하다. 용어와 개념을 소개하고 트랜스젠더 운동이 가시화된 100여년간의 역사와 시련, 그리고 현재의 동향이 기술되어있다. 또 중간 중간에 읽을거리를 넣어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의문들도 꼼꼼히 답하고 있다. 젠더 정체성이 결정된 상태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 오는 것이 아님을 포함하여 젠더의 역사성과 정치성을 공들여 설명하고, 동성애를 중심으로 했던 성소수자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이 트랜스젠더의 정치적 쟁점과 갖는 교차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아주 구체적인 영역들까지 내려오지만 여전히 중요한 화두는 이것이다. 왜 어떤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고 어떤 삶은 아닌가.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을 이해하는데 내게 도움이 되었던 두 권의 책이 더 있는데, <무지개 속 적색>과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가 그것이다. 왜 어떤 삶의 형태만이 가치 있게 여겨질까? 특정한 삶의 형태만이 사회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재생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형태의 가족만이, 자본주의적으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몸만이 지금의 사회를 지탱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에 대한 설명은 사실은 결과로 결과를 설명할 뿐인 것으로, ‘(이러한 삶이 가치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은 잘못되었다.’ 고 말하는 식이다. 혹은 ‘(가치 있는 가족의 형태가 이렇기 때문에) 여성은 원래 가정적인 일을 잘 하도록 타고났다.’고 설명하는 것과 같다. 트랜스젠더 역시 같은데, 여러 주요한 연구들을 통해 우리가 젠더 정체성을 ‘타고나는’ 것이 아님이 밝혀진 이후에도 젠더를 섹스에 종속시키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가치 있는 젠더체계가 오직 둘로만 구성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트랜스젠더 쟁점은 페미니즘 운동이나 퀴어 공동체의 정치를 가로지르며 종종 오해받거나 공동체의 바깥에 존재하기도, 또 내부에 들어가기도 하는 격동의 시간을 통과했다. 상태가 아닌 독립된 정체성만으로 인식되거나 (‘트랜스인 게이’와 같은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트랜스젠더’ 로서만), ‘그래서’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해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혹은 레즈비언 공동체와 겪게 된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과해야 하기도 했다. (제2의 물결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mtf와 ftm 모두를 ‘남성성’을 근거로 비난했다.) 그러한 역사를 거쳐 인터섹스 정치 운동과 공유하는 중요한 쟁점들 (모호함, 섹스가 젠더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 등)에 이르고 9.11 이후 조금 더 경직된 언어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들에 문제제기하는 방식으로의 운동을 말하며 책은 끝을 맺는다.


너무나 거친 언어들로 정리했지만 정말로 많은 것들이 들어있어서 나로서는 이렇게밖에 정리할 수 없었다. (발췌한 내용들은 따로 정리해서 올려놓았다.) 입문자에게는 그만큼의 매력으로, 또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넓고 풍부한 내용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는 책이다. 예컨대 게일 루빈의 작업을 소개할 때, 제2물결 페미니즘의 경과와 한계에 대해 사전지식이 있다면 그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책을 끝까지 읽고 든 생각은 한번 더 읽고 싶다는 것이었고, 그 이후에 글을 써야 했지만 반납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급하게 작성하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여전히, 그래서 ‘그 사람’의 젠더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궁금해 했던 나에게 적어도 이 책은 그러한 구분법 자체를 의문시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떠다니고 있으며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는 방식은 꼭 단일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나는 뜬금없이 애인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동성애인을 지칭하는 단어로만 여겼지만 창밖을 보면서 나는 어느 한 젠더에 머물지 않는 애인을 생각했고 가상의 트랜스젠더 친구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의 삶을 넘어 쌓여온 역사와 그저 모든 사람의 삶이 각자 다 다르고 소중하다는 구호를 넘어서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되어주었던 이론들을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젠더의 구분이 만들어온 실재했던 차별들을 이해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할 것이지만 더 많은 교차점과 그만큼의 차이점을 갖는 수많은 삶의 모습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 새롭게 배워간다. 종종 멈추고 울컥했으며, 나에게 몇몇의 친구들이 그런 존재이듯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안심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우리는 결정된 정체성으로 세상에 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온다. 우리가 온 세상이 기울어져 있고 그래서 우리는 나쁘게 만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정해져있는 상태로 이 세상에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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