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은 젠더 정체성(남성이거나 여성, 또는 여성인 동시에 남성이거나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는 주관적 감각)이 생물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젠더 정체성의 생물학적 ‘원인’은 한 번도 입증된 적 없을 텐데도 말이다. 다른 많은 사람은 젠더가 생물학보다는 언어하고 비슷하다고 이해한다. 곧 우리는 언어를 쓸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을 지닌 인간이지만 우리 두뇌에 ‘미리 설치돼’ 내장된 언어를 갖고 태어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문화적 젠더 체계의 특정 위치에서 동일시하고 ‘말하기’를 배울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을 갖고 있지만, 미리 결정된 젠더 정체성으로 세상에 오지는 않는다. (p.24)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점은 젠더는 역사적이고(시간이 흐르면서 바뀌고), 장소와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르고, 우발적이라는(겉보기에 무관한 많은 다양한 것들의 결함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우리를 트랜스젠더 정치의 주요 쟁점으로 데려간다. 몸의 섹스와 그 몸이 살고 있는 사회적 범주는 어떤 필연적 또는 결정적 관계도 없다. 인간 사회의 가변성을 관찰해 끌어낸 이런 단언은, 사회적 의미에서 어떤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기본적으로 몸의 섹스로 결정된다는 일반적 믿음을 부정하기 때문에 분명히 정치적이다. 사회가 그 구성원이 선택하지 않는 신체 차이에 따라 그 사람이 들어갈 범주를 나누는 방식이 결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또한 정치적이다. 페미니즘의 주안점 중 하나는 사회가 남자의 몸보다 여자의 몸을 더 착취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본적인 통찰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트랜스젠더 관점은 또한 젠더 억압의 또 다른 차원에 민감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 문화는 살 가치가 있는 몸 유형의 넓은 범주를 둘, 오직 둘 뿐인 젠더(그중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더 큰 사회적 통제에 종속되고, 둘 다 성기의 섹스에 따른다)로 축소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런 지배 양식에 순응하지 않는 삶은 대개 인간쓰레기로 취급된다. 살 만한 삶의 범위를 확장하며 섹스와 젠더의 강제적 통합을 파열하는 것은 트랜스젠더 페미니즘과 사회 정의 운동의 중요한 목표다. (p.33)


이 무렵 사회적 규제의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는 빠르게 발달한 의료 과학이었다. 현대 의학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고 무수히 많은 사람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킨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의학은 그렇게 해왔다. 그러나 18세기가 끝난 이래로 과학은 점차 종교를 대체해 가장 큰 사회적 권위를 갖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의학이 점점 더 중요하게 수행한 구실은 일상생활의 규정이었다. 의학은 종종 매우 보수적인 사회적 목적에 쓰였다.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든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의료 전문가와 기관은 어떤 것이 병들었거나 건강한지, 정상이거나 병리인지, 제정신이거나 미친 것인지를 결정할 사회적 권력을 지녔다. 그리하여 종종 중립적인 형태일 수도 있는 인간 차이를 부당하고 억압적인 사회 위계로 변모시켰다. 의학이 지닌 사회적 권력이 특정하게 작동하는 방식은 트랜스젠더 역사에서 특히 중요하다.

자신의 체화를 바꿔야 한다고 느끼는 트랜스젠더에게 의학은 오랫동안 점점 더 만족스러운 개입의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마취법이 발명되자, 그리고 19세기 중반 또다시 소독법의 중요성을 새롭게 이해하며 수술이 더는 사형 선고가 아닌 것이 되자, 사람들은 자기 몸에서 젠더를 의미하는 부분을 외과 수술을 거쳐 변형해달라고 요청하러 의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료 과학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었다. 스스로 알아서 개입하려는 의사의 의지는 규정하고 판단하는 권력하고 함께했다.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려는 트랜스젠더는 너무 자주 트랜스젠더 현상을 정신병이나 신체 질병의 증상으로 구성해야 했다. 부분적으로 보면 ‘질병’이 보통 의료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p.69)


루빈이 한 논의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몇몇 페미니즘 학파(‘순수함’이라는 전통에 의지하는 학파)가 자기 관점을 꼭대기에 놓고 자기가 도덕적으로 수상하다고 여기는 다른 견해를 판단하고 비난할 권력을 차지하는 위계를 설정하는 방식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루빈의 논문은 초기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이 ‘계급’이라는 경제적 개념을 비경제적 특성을 많이 갖고 있는 ‘여성’범주에 적용하려 할 때 얼마나 허우적거렸는지 지적하고, 여성의 상황에 특정한 일련의 분석 도구, 곧 젠더 분석을 발전시킬 때만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데 주목한 시도로 가장 널리 알려져있다. 그러고 나서 루빈은 젠더 연구인 페미니즘이 결국 섹슈얼리티 분석을 위한 충분한 준거 틀이 아니라고 말하고, 페미니즘이 경제적 관심을 버리지 않은 것처럼 페미니즘을 버리지 않으면서 성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계속하는 새로운 ‘섹슈얼리티 연구’를 제시한다. 이 논의는 결국 퀴어 연구가 해결해야 할 지적 과제의 기초로 여겨졌다. 그러나 루빈은 그런 중요한 주장을 하면서 트랜스젠더 실천을 젠더 정체성이나 자기의 감각이기보다는 성적이거나 성애적 행위로 명확히 범주화했다. 1990년대 초 트랜스젠더 운동이 다시 세력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섹슈얼리티가 페미니즘에 제기한 도전하고 비슷한 도전을 새로운 퀴어이론에 제기했다. 곧 퀴어 섹슈얼리티의 뼈대가 트랜스젠더 현상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분석 틀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이런 질문은 그 뒤 트랜스젠더 연구에서 새로운 간학제적 학문 분야가 발전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p.201)


정체성 범주로 조직하지 않는 대신 특정 질병과 그 질병의 희생자를 소외시키는 사회 구조 전반을 겨냥하는, 에이즈에 맞서 싸우려는 이런 새로운 종류의 뻔뻔한 친동성애자, 비분리주의자, 반동화주의자 연합 정치의 이름이 ‘퀴어’였다. 새로운 정치는 학계에 자리잡은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하고 공명했지만, 그 정치는 동성애자를 욕하는 ‘퀴어’라는 단어를 되찾아와 반에이즈 편견에 도발적으로 쏘아붙이는 말(“그래서 뭐?”)로 바꾼 액트업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 ACT-UP처럼, 변명하지 않고, 대립을 일삼고, 대중 매체에 정통한 저항 집단에서 힘을 얻었다. 이 새롭게 정치화된 ‘퀴어’의 의미는 1990년 6월 뉴욕 게이 프라이드 행진에서 전투적 에이즈 조직이 배포한 전단지, ‘퀴어는 이것을 읽어라QUEERS READ THIS!'라는 표제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연인의 군대‘에게 거리로 나가자고 촉구하는 문서에 처음 나타났다. 마치 1960년대의 동성애자 해방전선처럼 며칠 안에, 그리고 몇 달 동안 자발적으로 모인 ’퀴어 네이션Queer Nation' 지부가 미국 곳곳에서 갑자기 생겨나기 시작했다. 1990~1992년 사이, 그 성쇠를 아우르는 짧은 2년 동안, 퀴어 네이션은 에이즈와 동성애를 둘러싼 대중의 인식을 바꿨고, 공동체의 대화에 다시 트랜스젠더 쟁점이 받아들여지게 내부의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공동체의 정치를 바꿨다. 동시에 트랜스젠더 쟁점은 새로운 목소리로 페미니즘에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p.206)


대부분의 트랜스젠더 지지자는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남성이나 여성의 존재 방식을 묘사하는 형용사로, 또는 그런 표식에 따른 범주화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계급이나 인종이나 신체 능력처럼, 그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는 성적 정체성의 분리된 ‘종’을 서술하는 명사보다는 성적 지향 범주에도 교차하는 서술적 용어로 기능했다. 다시 말해 트랜스젠더 남성은 흑인이거나 가난하거나 장애인일 수 있듯이 동성애자나 이성애자나 양성애자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비트랜스젠더 게이와 레즈비언은 ‘T'를 정확히 자기의 공동체에 덧붙일 새로운 종류의 성적 정체성으로 여겼다. 트랜스를, 트랜스이기도 한 L,G,B 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도 그저 트랜스로 여겼다. 이렇게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로, 기술적 성질보다는 사람의 종류로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바라보는 오해는 동성애와 양성애란 그것 자체로 ’젠더 규범적‘이며 전통적 정의의 ’남성‘과 ’여성‘에서 벗어난 사람은 누구든 자동으로 트랜스젠더 범주에 속한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불행한 효과를 낳았다.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이런 사고방식은 동성애 문화와 주류 사회가 공유하는 젠더 개념에 근거한 둘 사이의 유사성을 강화하고, 주류 사회와 LGBT 운동 양쪽에서 트랜스젠더의 소외를 영속하는 경향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진전은 인터섹스 정치 운동의 등장이다. 셰릴 체이즈Cheryl Chase는 체이즈 자신처럼 모호한 성기(명확히 남자도 여자도 아닌)로 태어난 아기에게 가하는 소아과의 생식기 외과 수술 관행을 종식시킨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갖고 199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아메리카 인터섹스 협회Intersex Society of North America.ISNA를 만들었다. 체이즈는 태어날 때 남자로 지정받았지만 몇 년 뒤 의사들은 그 결정을 뒤집었다. 부모에게 아이를 여자애로 키우라고 말한 뒤, 자기들이 예전에 아주 작은 음경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클리토리스라고 여기는(그래서 너무 큰) 것을 ‘적절한’ 크기로 줄이는 수술을 실행했다. 의료 전문가가 인터섹스인 아이의 ‘정상적’ 젠더를 발달시키게 돕는 데 최선이라 생각한 바로 그것, 유아기 젠더 재지정을 체이즈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 성기 수술은 체이즈가 ‘정상’이라고 느끼게 돕기보다는 나중에 살아가면서 오르가슴을 느낄 능력을 심각하게 손상시켰고, 자기가 성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형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성인이 돼 고의로 숨겨진 어린 시절 사건을 알게 됐을 때, 체이즈는 자기의 삶 전체가 거짓인 것처럼 느꼈다. 양성구유 몸이나 그 몸을 ‘정상화’하려는 헛된 노력인 수술을 모두 받아들이게 해주는 어떤 것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 잠시 자살을 생각한 뒤, 체이즈는 자기가 겪은 고통을 다른 아이도 겪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체이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폭발한 새로운 퀴어 운동과 트랜스젠더 운동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싶어 일본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그 결과가 ISNA였다. ISNA는 인터섹스와 가족에게 동료 지원을 제공하고 일반 대중에게 인터섹슈얼리티를 교육하면서, 의료 기관이 모호한 생식기를 다루는 방식을 바꾸는 데 엄청난 진전을 가져왔다. 체이즈는 인터섹스 정치를 퀴어와 트랜스젠더 정치에 관련된 움직임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단지 이 둘이 모두 의료 당국에 도전하고 권력에 기반한 사회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상화 수술 관행이 바로 섹스가 젠더를 생산하지 않고 젠더에 관한 신념이 실제로 몸의 섹스를 생산한다는 점을 까발리는 사례기 때문이엇다. 젠더 이분법에 맞지 않게 태어난 몸은 그 이분법에 맞추느라 문자 그대로 잘렸고, 수술로 ‘정상’을 생산하는 과정은 비가시화 됐으며, 그 일을 겪은 당사자는 침묵해야 했다. 마치 의료 기관이 트랜스섹슈얼에게 한 일하고 똑같았다. ISNA는 또한 인터섹스 수술에 페미니즘 관점을 제시했다. 모호한 성기로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는 여자로 지정받았는데, 외과 의사가 정상적인 남자 외모에는 충분하지 못한 요소로 보이는 성기를 제대로 갖추려고 새로운 신체 구조를 만드는 쪽보다 ‘초과된’ 조직을 제거하는 쪽이 훨씬 더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음경 크기를 둘러싼 이런 집착은 여성을 남성이 가진 것을 ‘결핍한’ 존재로 여기는 여성성에 관한 문화적 평가 절하에 결합되면서 인터섹스 아동에게 필요 없는 수술을 하는 데 공모했다. 인터섹스 외과 수술의 생명 의학 윤리를 살핀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수잔 케슬러Suzanne Kessler는 모호한 생식기가 아기의 건강에는 거의 위험하지 않지만 아기의 문화에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인터섹스 운동과 트랜스젠더 운동은 때때로 교차하고 서로 겹치기는 하지만, 각각 독자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두 운동은 1990년대 초 퀴어 정치라는 공통된 뿌리를 갖고 있다. (p.211)


퀴어와 LGBT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1990년대 이래 트랜스젠더 운동에 중요한 만큼, 21세기 초의 사건은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의 섹슈얼리티와 젠더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 사고하는 일이 트랜스젠더 활동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이후 국경 감시와 여행 서류에 관한 주의가 강화되고 주 발행 신분증을 얻을 수 있는 기준이 더 엄격해졌다. 이 모든 것이 많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떤 수준의 보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변수에 따라 몇몇 트랜스젠더는 지금 자기가 쓰는 이름이나 젠더 외양을 정확히 반영한, 여권 같은 엄격히 관리된 신분 서류를 구할 수 없게 됐다. 그런 트랜스젠더들은 어떤 곳은 여행할 수 없게 됐고, 어떤 곳은 여행하기 위험해졌다. 9.11 이후 미국에서 강화된 이동 제한은 트랜스젠더를 게이나 레즈비언 공동체보다는 이주자, 난민, 미등록 노동자하고 비슷한 처지로 만들었다. 트랜스젠더 정의를 추구하는 일은 처음에는 젠더 정체성이나 젠더 표현하고는 거의 관련 없어 보이는 운동과 투쟁에, 그렇지만 국가가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사람을 단속하는 방식, 비전형적 인구 구성원의 삶을 관리하려 시도하다가 불거진 관료적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방식에 관련된 모든 일들에 점점 더 결합하게 한다. (p.229)


* 수잔 스트라이커, <트랜스젠더의 역사>,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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