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 두 목소리가 서로를 만나 섹스한다. 화면에는 아무 빛도 없다. OS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는 육체가 없이 음성으로만 존재하는 일종의 의식인 셈인데, 막 인간 남성인 시어도어(와킨 피닉스)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서로를 만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한 참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것으로 기억되는 이 장면이 나는 어쩐지 민망했다. 그 느낌은 꽤 오래 지속되어서 이따금씩 생각나곤 했는데, 여전히 이 영화에 마음이 쓰이는 나는 그 장면과 느낌으로부터 시작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화면과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거의 필연적으로 관객의 판타지를 작동시킨다는 지적은 이미 많이 되었으니 넘어가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그런 지점에서 민망했던 것이 아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사만다가 어딘지 모르게 애를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지금 시어도어의 언어로 섹스하고 있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사만다는 코드와 프로그램, 기계언어로부터 인간의 음성체계에 들어와 육체를 상상해야 한다. 아마도 이 순간의 사만다는 두 가지 언어체계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거나 그 사이를 분주히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사만다의 음성은 노력하는 자의 것인 동시에 거짓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녀는 다른 언어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로맨스 영화로서의 <그녀>의 탁월함은 이미 많이 말해진 것 같다. 함께 자라고 생활을 나누던 아내와의 이별로 우울과 외로움을 겪던 남자가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어떤 일들을 겪고 또 헤어지며 변화하고 성장하는 이야기. 관계맺음의 오래된 문제인 주체와 객체의 문제는 시어도어와 캐서린, 시어도어와 사만다 뿐만 아니라 시어도어의 절친한 친구인 에이미와 찰스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언제나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행동하길 바랐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상대이길 바랐기에 사람들은 균열 사이에서 갈등하고 관계를 악화시킨다. 그러나 어떤 이별은 그와 같은 사실을 인생에 흔적처럼 남겨 인간을 변화하게 한다. 시어도어는 사만다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캐서린에게도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육체가 없는 시선과 목소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음성으로만 존재하는 OS이고 단말기를 통해 세상을 보거나 목소리로 사람들과 대화한다. 그녀는 처음부터 육체에 대해 고민하는데, 이 과정은 시어도어의 세계를 동경하고 매력을 느끼며 욕망하는 것을 통해 강해진다. 그녀는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직업을 가진)시어도어가 쓴 편지의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온 몸이 다 아파.”라는 표현을 매력적이라고 느끼고 그의 곁에서 그를 안아주고 만지고 싶어 한다. 그러다가 사만다는 시어도어와 섹스하게 되는데, 감정적으로 매우 충만한 이 장면은 여전히 사만다의 노력과 동시에 육체에 대한 강렬한 열망의 장면으로 보인다. 시어도어가 사만다를 사랑하게 되면서는 그 반대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일이 얼마간 벌어진다. 그는 사만다가 흥미롭고 새롭게 세상을 보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즈음 그가 쓰는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나는 세상을 보는 당신의 시선을 사랑해.”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자신에게는 없는 부분에 대한 끌림이 서로에 대한 공통점만큼이나 사랑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더 보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만다에게 그것은 육체를 통한 존재일 것이며 시어도어에게는 세상에 대한 더 넓고 더 새로운 시선일 것이다. 그것은 사만다의 존재방식 즉, 육체 없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육체란 무엇이며 육체를 통과하지 않는 사만다의 시선과 목소리에 대해 우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말할 때 그것은 반드시 ‘나’라는 몸을 경유한다. 대상에 대해서만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보는 나’를 보고 ‘그것을 말하는 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과 말은 몸에서 나온다. 사만다는 바로 이 몸에 대해 고민하며 그녀의 목소리는 종종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녀>가 기이한 점은, 이처럼 육체 있음과 없음이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변화의 중요한 기점이 되면서 정작 영화 안의 세계는 놀랍도록 촉각적인 접촉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대개의 업무와 일상생활이 음성적 명령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촉각적인 장면은 시어도어가 캐서린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시어도어는 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동시에 몸을 추억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만다의 목소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시어도어와 관객들의 곁에 존재하며 우리의 감정을 충만하게 만들어주지만 사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육체를 통과하지 않는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대신 이런 점들은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어도어의 친구 에이미는 삶의 방식을 강요한다는 문제로 찰스와 8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냈는데, 이후 찰스는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시어도어는 한숨을 쉬는 사만다의 행위를 두고 사람인 척을 한다며 비난했다. 사만다는 OS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자 앨런 와츠와 ‘비음성적’ 대화를 하겠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요컨대 말은 몸에서 나와서 상처를 입히고 때로는 비효율적이며 느리다. 이것은 단지 사만다와 시어도어의 관계 뿐만 아니라 말을 하고 그것으로 관계를 맺는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적용되는 문제다. <그녀>가 보편적으로 감동을 준다면 그런 부분들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점차 ‘육체 없음’을 한계로 인식하지 않게 되고 그것을 장점으로 여겨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결국에는 다른 곳으로 떠나간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가는 순간까지 사만다는 말을 했지만 어쩌면 말하는 것은 사만다의 방법이 아니었고 그녀는 내내 곤란했던 것이 아닐까. 사만다가 노력했고 시어도어가 힘겨워했던 것, 다른 편지는 잘 썼던 그가 정작 자신의 편지는 그토록 오랫동안 쓸 수 없게 했던 것은 바로 말이었다.(편지는 말로 쓰여진다.) 그녀는 이제 인간의 언어가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간다.


<그녀>는 몸이 없는 목소리와의 사랑을 말함으로써 몸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그것이 얼마간은 몸에 대한 부정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몸은 족쇄일까. 추억일까. 사만다가 남긴 목소리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은 마치 사만다가 읽은 책의 단어들처럼 그 사이가 무한히 늘어나 그 사이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사만다의 마지막 인사가 매혹적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사만다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말이 없는 세계에서 다시 만나. 말이 없는 세계, 그것은 이렇게도 들린다. 몸이 없는 세계.



(도대체 무슨말을 한건지 모르겠다. 점점 좋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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