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me into the world under the sign of Saturn," Benjamin wrote, "the star of the slowest revolution, the planet of detours and delays."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벤야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기질을 모두 자신의 주요 연구과제에 투사했으며, 그의 기질이 그의 글쓰기의 주제를 결정했다. 17세기 바로크극 (‘음울한 나태’의 여러 국면을 극화한 극이다)이나 그가 가장 뛰어나게 다룬 작가들 - 보들레르, 프루스트, 카프카, 칼 크라우스 등의 주제에서 벤야민이 본 것이 바로 그 우울함이었다. 벤야민은 심지어 괴테에게서도 토성적 요소를 발견한다. 괴테의 <선택적 친화성>에 관한 벤야민의 위대한 에세이에서는 작가의 작품을 작가의 삶을 들어 해석하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지만, 실제로 벤야민은 작품에 대한 깊은 성찰 가운데 작가의 삶을 선택적으로 사용하여, 우울하고, 고독한 기질을 드러내는 정보를 언급한다. (그래서,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세상을 그 혼란상 속으로 끌어당기는 고독”을 묘사하고, 카프카도 파울 클레처럼 “본질적으로 외로웠다.”고 설명하며, 로버트 발저의 “인생에서의 성공에 대한 공포”를 인용한다.) 삶을 이용해서 작품을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품을 이용해서 삶을 해석할 수는 있다.


벤야민이 베를린에서 보낸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추억하는 두 권의 짧은 책, 1930년대에 씌어져 생전에는 출간되지 않은 이 책에는 벤야민의 자화상이 가장 뚜렷하게 담겨 있다. 우울증 초기 상태의 벤야민에게는, 학교에서나 어머니와 산책할 때나 “고독이 인간의 유일한 적합한 상태로 보였다.” 방안에서의 고독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벤야민은 어린 시절에 병치레를 많이 했다. 거대 도시 내에서의 고독, 자유롭게 몽상하고, 관찰하고, 숙고하고, 떠도는, 한가히 산책하는 사람의 분주함을 말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자의식적인 우울한 인간 보들레르로 구체화된 산책자 상에 19세기의 감성을 결부시키면서, 자기 자신의 감성도 도시와의 환영적이고 예민하고 미묘한 관계에서 대부분 이끌어낸다. 거리, 길, 아케이드, 미로는 벤야민의 문학적 에세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이며 특히 기획 중이던 19세기 파리에 대한 책과 여행기, 회상록등에도 물론 빈번히 나온다. (로버트 발저의 은둔적 삶과 뛰어난 책의 중심에는 산책이 있다. 그래서 벤야민이 발저에 대해 더 긴 글을 썼더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된다.) 벤야민 생전에 출간된 책 중 유일하게 자전적 특징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책 제목은 <일방통행로>다. 자신에 대한 기억은 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이며, 그 장소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위치시키고 그곳에서 어떻게 이동하였는지에 대한 기억이다.


* 아샤 라키스와 벤야민은 1924년 여름 카프리에서 만났다. 라키스는 라트비아인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연극 연출자로, 브레히트와 피스카토르의 일을 돕고 있었다. 벤야민은 라키스와 함께 1925년 <나폴리>를 썼고 그녀를 위해 1928년에 <프롤레타리아 어린이 연극 프로그램>을 썼다. 라키스는 벤야민을 1926~27년 겨울 모스크바로 초청했고 1929년 브레히트에게 소개했다. 벤야민은 1930년 아내와 마침내 이혼하고 라키스와 결혼하고자 했으나 라키스는 리가(라트비아 공화국의 수도)로 돌아갔고 소비에트 캠프에서 10년 동안 살았다.


<독일 비극의 기원>에서 벤야민은 바로크 극작가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간적 움직임을 공간적 이미지로 파악하고 분석한다.” 이 책은 시간을 공간으로 변환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벤야민의 최초의 언급일 뿐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의 저변에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가장 뚜렷하게 설명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 역사의 절망적인 연대기,” 쉼 없는 쇠락의 과정에 대한 우울한 인식에 빠져, 바로크 극작가들은 역사를 탈출하여 천국의 ‘무시간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17세기 바로크적 감성에는 역사에 대한 ‘파노라마적인’ 인식이 있다. “역사는 배경 속으로 흡수된다.” <베를린의 유년시절>과 <베를린 연대기>에서 벤야민은 자신의 삶을 배경 속으로 흡수시킨다. 바로크 무대 세트를 이어받은 것은 초현실주의의 도시, 그 꿈과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잠시, 덧없이 존재하다 사라지는” 형이상학적 풍경이다. 벤야민의 학창 시절에 크나큰 슬픔을 안겨 주었던 열아홉 살짜리 시인의 자살이, 그 죽은 친구가 살던 방의 기억으로 압축되어 있듯이 말이다.


벤야민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세상을 공간화하는 방식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예를 들어 사고와 경험은 폐허로 개념화한다.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지형을 이해하고, 어떻게 지도로 그릴지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토성적 기질의 특징은 자의식과 스스로에 대한 가차 없는 태도를 들 수 있는데, 이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자아는 하나의 텍스트로, 해석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이 기질은 지성인에게 적합한 기질이다.) 자아는 어떤 과제이며 만들어 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이 기질은 예술가나 순교자에게 적합하다. 벤야민이 카프카에 대해 말하듯, “실패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을 구하는 사람의 기질이다.) 그리고 자아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늘 너무나 느리다. 이들은 항상 스스로에 대해 뒤쳐져 있다.


우울증 기질은 내적 무기력감을 외부로 투사하는 경향이 있어, “거대한, 거의 물질적으로” 경험되는 불행을 영구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벤야민의 주장은 좀더 대담하다. 벤야민은 우울한 인간과 세상 사이의 심오한 상호작용은 언제나 사물에서 (사람이 아니라) 일어난다는 것을 간파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의미를 드러내는 진정한 상호작용이다. 우울한 인물은 죽음의 그림자에 쫓기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우울증 환자다. 혹은, 세계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울한 인간의 관찰에 스스로를 내맡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에 생명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것을 숙고하는 정신은 더욱 강력하고 영민해진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벤야민에게는 1918년 태어난 아들이 있었는데, 1930년대 중반 벤야민의 전부인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했다) 벤야민은 이 관계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우울한 인간에게 가족 관계의 형태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것’은 허위적으로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것이다. 의지, 독립, 일에 몰두할 자유를 고갈시킨다. 또한 인간성에 대한 도전도 되는데, 우울한 사람은 자기가 인간성에 있어 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벤야민의 문장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문장에서 다음 문장이 이끌려 나오는 게 아니라, 각 문장이 첫 문장이자 마지막 문장인 것처럼 쓰였다. (<독일 비극의 기원>의 서문에서 그는 “작가는 문장마다 마무리를 짓고 다시 시작해야한다.”라고 말한다.) 정신적, 역사적 과정은 개념을 장면으로 그린 것처럼 묘사한다. 사고는 극단적으로 표현되고 지적 시각은 선회한다. 벤야민의 사고와 글쓰기 스타일은 부적절하게 금언적이라고 불리지만 정지화면으로 된 바로크 양식이라고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이런 스타일로 글을 쓴다는 것은 고문이다. 완전한 집중에서 나오는 내적 시선이 눈앞에서 그 주제를 소멸시켜 버리기 전에, 각 문장에 모든 걸 담아야 하는 것이다. 벤야민이 보들레르와 19세기 파리에 대한 자기 책에 담긴 모든 생각은 “광기의 영역에서 억지로 빼앗아 와야 한다.”고 아도르노에게 말한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수잔 손택, <우울한 열정> 중 '토성의 영향 아래' (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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