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 술을 먹고 이 글을 썼다가 지금까지 들춰보지 않았다. 다시 보니 부끄럽고 말도 안되는 끄적임이지만 별로 고치고 싶은 곳도 없다 싶어 그냥 올려본다. 올해 10편의 나의 사사로운 영화들.


우선 근황. 요즘 블로그가 아닌 다른 곳에 글을 조금씩 쓰고 있다. 그래서 업로드가 매우 많이 뜸해졌지만, 조금 더 힘내서 블로그에도 글을 쓰도록 노력해보려고 하는 중. 여러 번 망설였지만 나름대로 2017년의 사사로운 리스트를 생각해봤고, 자유롭게 글로 남겨볼까 싶다.


KMDB에서 집계하는 사사로운 리스트의 경우에는 공개 시기도 나름대로 규칙을 적용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런데서는 자유로워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처음 본 영화, 그 중에서 극장 관람 위주로 골라보았다. 좋다고 여기저기서 난리치고 다닌 영화들인데 한마디도 안하는 건 너무 슬퍼서, 밤을 틈타 써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기 화면에 일렁거리는 것들과 함께 하고 싶다, 벅차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영화들이다.


[얼라이드]는 글도 끄적인 적 있지만, 보는 내내 맥스를 부르는 말들에 대답하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어떤 방해도 없이 맥스와 마리옹을 잇는 직선의 카메라를 기억하며 영화는 계속해서 호명과 응답에 부딪치고 있었다. 너를 부르기 때문에 내가 되기, 혹은 저메키스의 거울은 무엇일까.


[로건]에 대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머문 땅을 결코 떠날 수 없던 어른들과 그 땅을 결국 떠나가는 아이들. 무덤과 호수, 볼 수 없는 배와 리무진의 영화. 극의 과거이자 현실을 따라 쓰여진 것으로 이해되는 코믹스와 그 코믹스가 제시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영화. 타인의 피가 묻은 주먹. 그 손들의 마주잡음. 이 영화를 보면서 왜 그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동요했는지 여전히 말로 설명하기가 벅차다. 일종의 환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버지와 자식의 이야기인데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뻔한 상처입은 영웅의 이야기인데도,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더 이상 가지 못할 곳까지 다 부서진 몸을 이끌고 가보려고 하는 고집스럽고 때로 이기적인 그 태도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전주국제영화제 최고의 경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집으로 데려다 주오]. 이 단편 하나만 보았더라도 괜찮을 뻔 했다. 그려진 것이 분명한 공이 계속해서 계단 위를 튕겨 내려가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것이 키아로스타미의 유작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이유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이 따뜻하고 치열한 감독의 새로운 영화를 보지 못하리라는 생각 때문에? 당연히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우리에게 공의 운동, 그것도 그려진 운동을 남겼다. 끝나지 않을 운동, 공의 뒤를 따르고 있던 보이지 않는 소년의 운동, 운동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것을 보존하려는 것 같은 마지막 장면. 키아로스타미가 소개하는 이탈리아 남부의 골목과 계단에서, 그는 그 무엇도 아닌 영화의 공간을 운동을 통해 열어가고 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정말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EBS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D-BOX에서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을 보았다.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극장에서 관람하지 못한 영화이지만, 영화제 기간에 영화제측에서 제공한 경로를 따라 보았으므로 포함시켰다. 우연히 발견된 다량의 질산 필름과, 그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발견하게 되는 무성영화와 황금광 시대의 겹쳐진 역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영화 같은’ 사건을 이 영화는 그야말로 영화의 방식으로 담아낸다. 질산 필름의 물질적 조건에 달라붙은 필연적인 소멸과, 얼어붙은 시간 그 영원함에 대한 안감힘 사이에, 불과 얼음 사이에 이 영화가 있다. 그 진동 자체가 마치 필름의 꿈인 것처럼, 언젠가는 사라져갈 것이 분명한 자신의 몸에 영원할 영화를 담고 싶은 욕망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장면들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을 붙든다. 얼어붙었기 때문에 마치 불에 타는 것처럼 복원된 질산 필름의 손상된 장면들은 단지 성실하게 복원된 것을 보는 감흥을 넘어서게 만든다. 요컨대 불은 필름에게, 위협인 동시에 매혹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까. 고대의 도롱뇽은 불길에도 타 죽지 않는 영물이었다는 말로, 너무나 강렬해서 사라져버릴 것 같은 무희의 춤으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를 잊을 수 없다.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여전히 내게 불가해한 영화 중 하나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보던 순간 그토록 슬펐던 이유도 아직 알 수 없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사라진 영화. 적어도 내게 이 영화는 그런 영화이기도 하다. 그의 육중한 몸이 사라진, 혹은 중력이 사라진 것 같은 영화. 그런데도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 영화. 언젠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게 될까.


누가 뭐래도 내게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죽음이 아닌 생의 영화다. 바다 곁에서 생을 향해 걷는 여자. 그 순간의 두근거림을 잊을 수 없다. 영화는 살아나 걸어갈 수 있을까.


켈리 레이차트의 [어떤 여인들]은 이거면 됐다, 이 공기, 이 풍경, 그리고 이 여자들의 호흡이면 됐다고 느낄만한 순간들을 주었다. 우리 앞에 놓인 길, 그리고 그 길의 바깥을 지켜봐주는 영화가 있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안간힘과 종종 부딪쳐 방향을 흩트리고 때로 되돌려놓는 정념들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풍경이 있고 그 안에서 창을 열어 차갑고도 따뜻한 햇살을 펼쳐놓는 인물들이 있다. 그저 차를 몰거나 말을 타고 길을 따라 앞으로 나갈 뿐인데도 이 치열함은 올 한해 만난 영화들 중 손에 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윤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을 보면서 드디어 장소로서의 영화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도저히 모아놓을 수 없고 정리할 수 없는 각자의 목적과 경로, 활기와 운명을 지닌 채 무수히 떠돌다가 단 한번 마주치는 역사들의 장소가 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영화. 마주침의 장소로서의 영화.


[해피아워]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함께를 절실히 원하지만 그 조건들이 파괴된 시대, 아니 그것이 사실은 파괴될 것조차 없었던 것임을 힘겹게 알아가는 시대의 우리에게, 이 영화는 그 긴 러닝타임을 통해 과거의 단란했던 함께가 아니라 끊임없이 또 절실하게 ‘보아야’할 현재-미래의 함께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영화는 이혜란 감독의 [우리들은 정의파다]이다. 인디다큐 페스티벌에서 기획한 기획전을 통해 보았다. 2006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소위 똥물투척 사건 등으로 회자되는 동일방직 해고사태, 여성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촬영된 공장의 영상, 사진자료와 현재의 인터뷰를 교차시키는 가운데 진행되는 영화는, 이렇게 설명하면 다소 뻔하게 느껴지겠지만 보는 내내 일렁이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21세기 한국을 사는 우리가 응당 느껴야 할 과거 노동운동, 혹은 여성 조합원들의 투쟁에 대한 감화 비슷한 것이었을까. 당연히 그런 것들이 존재했겠지만 그것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엔 어딘지 부족하며 뻣뻣하게 느껴진다. 과거 영상과 사진들을 사용하면서도 그것들이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는 활력, 혹은 재치라고 느낄만한 힘들을 영화는 그 자체로 생동할 수 있도록 만든다. 각자의 공간에서 진행된 당시 조합원이었던 여성들의 ‘현재’ 인터뷰들은 단지 몇 분간의 촬영만으로도 그들의 역사와, 서로간의 관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과거의 사건과 그것을 대하는 현재의 영화,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시간들이 어느 한쪽의 주석이 되는 일 없이 동등하게 힘을 주고받으며 대화하고 생기롭게 겹쳐지는 모습을 본다. 많은 수의 소위 ‘사회파’, ‘노동운동’ 다큐멘터리를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엄숙함을 뚫고 활동하는 이와 같은 매력은 이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 보지 못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역사의 무수한 작품들이 있다. 더 많은 사람들과 볼 날이 오기를.


응당 포함해야 했지만 포함하지 못한 영화들이 지금 세어보니 너무나 많다. 일일이 열거하면 점차 서운해질 것 같아 쓰지 않기로 한다. 한 해에도 여러 편의 ‘좋은’영화들을 만나지만, 여기에 나열한 영화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마음을 너무나 아리게 했었던, 결코 좋다는 말로 가닿을 수 없는 이상한 감정들을 안겨다준 작품들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때로 가슴을 찌르는 유일무이한 순간들로 일깨워준 영화들. 아마 그렇게 정리하고 싶은 것 같다.


더 정제된 언어로, 더 치열한 생각으로 일종의 결산을 하게 될 날이 곧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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